미련한 예스맨 펫시터

by 펫시터 루미 언니

미리 말하자면 난 예스맨이다. 원래도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지만 뭐든 그러려니 하는 성격도 가지고 있어 정말 불합리적인 게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 예스를 외친다. 펫시터 일도 예외는 없다. 정말 피곤한 게 아니라면 단골이 불러주는 일은 당일 예약도 수락한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는 한건만 하고 오면 되었던 일정도 3개, 4개로 늘어나 집에 돌아오니 녹초가 돼 있을 때도 잦다. 그만큼 내가 이 일에 깊게 몰입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눈치를 보려고 하는 건 아닌데 남편 눈치를 볼 때도 있다. 남편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주말에는 쉬는데 나는 프리랜서라 내가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스케줄에 맞춰 생활을 하고 있어 같이 쉬는 날도 주말 밖에 없으니 가능하면 나 또한 평일에만 일을 하고 주말에는 같이 쉬려고 하는데 어쩔 때엔 주말에도 예약을 넣어줄 때가 있어 순간적으로 주말을 온전히 같이 보내지 못하는 미안함과 동시에 펫시터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해 슬쩍 눈치를 보며 남편에게 다녀와도 되냐고 물어본다. 내가 눈치를 보는 것과 다르게 남편도 (나 한정으로) 예스맨이라 내가 하는 일은 뭐든지 긍정적이게 바라봐준다. 다만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남편의 마음이지만 아쉽게도 난 무리하는 성격이다. 한번 일이 없어 궁핍해지는 삶을 느껴보니 일이 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큰 소중함을 알고 있으며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 삶의 큰 원동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고 찾는다면 OK 완전 예스맨이 된다.


참고로 내가 일하는 펫시터 플랫폼에서는 9시부터가 방문할 수 있는 제일 이른 시간이지만 단골의 요청으로 8시 반에도 가봤고, 늦은 밤인 10시에도 가봤다. 일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돌봄 시간을 초과할 때도 있는데 페이를 더 받을 수 있음에도 가능하면 받지 않는다. 이건 내 나름의 단골을 만들기 위한 스킬이기도 하지만 어떤 날엔 신나게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집에 계시던 할머니가 (신청한 사람은 며느리) 잠드는 바람에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누르고 불러봐도 기척이 없어 비상계단에서 쪼그려 한 시간을 기다려본 적도 있다. 보호자분께선 정말 죄송해했지만 나는 그 친구가 좋았기에 더 자주 보자는 마음으로 추가 금액을 받지 않았다. (실제로 그 뒤로 단골이 되었다) 이렇듯 나는 예스맨이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 고양이에게는 더욱더 예스맨이다. 물어도 오케이, 할퀴어도 오케이, 고집부려도 오케이, 하악거려도 오케이다. 거의 서른까지 살면서 다른 일도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까지 예스맨이 되지는 않았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펫시터라는 일은 나를 쉽게 말랑하게 만든다. 이 일을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일까.


가끔은 오늘 쉬어야지 하는 날에 플랫폼으로부터 당일에 배정이 되지 않아 펫시터를 기다리고 있는 일에 대해 해 줄 수 있냐는 요청도 간간히 받는다. 이젠 눈치챘겠지만 나는 미련한 예스맨이라 어디 다른 곳에 가있는 게 아니라면 거의 99%는 가능하다고 한다. 멀어도 된다고 한다. 이처럼 갑자기 온 요청을 하기 위해 말벌 아저씨처럼 야반도주하듯 나간 일이 적지 않다. 얄팍한 마음이지만 이렇게 내가 누군가를 위해 요청을 들어주면 나중에는 돌고 돌아 나에게, 또는 우리 강아지를 봐주는 사람들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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