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s the way it goes?

The Sence of Ending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by 트로이의 연인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오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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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4-11-12 164929.png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at's the way it goes. 조지 해리슨이 말한다. "인생이 다 그런 거지." 조지 해리슨의 노래 제목이서가 아니라 흔희들 인생에 대해 말할 때 가장 흔히들 쓰는 표현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인생 뭐 별거 있어", "인생은 결국 흘러가게 마련이야". 그런데 줄리언 반즈는 이런 달관의 상식에 브레이크를 건다. "나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한국어 제목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원제 "The Sence of Ending"을 아주 절묘하게 의역했다고 생각한다. 딱 한 단어만 추가했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제목이었을 거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줄리언이 동의할 수 없다는 달관의 인생론은 인생은 결국엔 각자의 예감대로 흘러가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토니 웹스터는 인생을 논하고, 역사철학을 떠들어 대며, 세상에 시비를 걸던 허세덩어리 청춘을 거쳐 이젠 나이 들어 별 거 없는 인생에 건조한 노년을 그저 그렇게 소비하고 있는 평범한 노신사다.


치기 어린 청춘 시절을 거쳐, 만만치 않은 일상을 살아내야만 했던 중년의 시기를 통과하고 이젠 은퇴하고 안정적인 노년을 남들처럼 조용히 따라가야만 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토니 웹스터. 뭔가 있을 것만 같았던 인생은 생존을 위해 돈 벌고, 또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그러다가 평생의 동반자로만 생각했던 괜찮은 배우자와 원치 않는 이혼도 하게 되고. 이젠 외롭게 남은 시간을 정해진 루틴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보내야만 하는 처지다. 그렇다 인생이 별 다를 게 없다. 이렇게 살게 되기 마련이다. 한 마디로 "내 이럴 줄 알았다".


그에겐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그와 또래에겐 마치 저세상 존재만 같았던 엘리트 친구 애드리안. 그리고 그의 청춘을 소비하고 떠나버린 연인 베로니카. 하지만 베로니카는 그의 청춘을 갉아먹은 것으론 성에 안 찼는지 잘난 그의 절친 애드리안에게로 가 버렸고. 친구의 전애인과 사귀어도 괜찮겠냐는 예의 바른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던 애드리안은 더 이상 시시한 이 세상을 견디지 못해 자살해 버렸다. 애드리안 다운 마지막이었다. 그래 인생은 다 그런 거다. 세상은 애드리안처럼 고귀한 사람이 살아갈만한 곳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인생 달관자가 돼버린 이 노년의 독거남에게 매우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죽은 애드리안의 모친으로부터 이상한 편지를 받은 것이다. 애드리안의 일기장을 찾아달라는 부탁과 그에게 얼마간의 돈을 남기겠다는 이상한 전갈. 편지 끄트머리엔 "애드리안의 마지막은 행복했습니다." 란 내용까지 첨부된 있다.

"왜 나한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토니는 베로니카를 찾아 나서고, 우여곡절 끝에 애드리안에게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울러 그가 썼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편지를 전달받는다. 그가 애드리안과 베로니카에게 퍼부었던 저주의 편지.


책의 초반부에서 애드리안은 역사란 무엇인가란 교사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한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토니가 애드리안의 역사관에 동의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프랑스 역사학자 파트리크 라그랑주가 내린 역사정의는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최소한 토니에게 그의 개인사는 특별할 것 없이 늙어버린 독거남의 의미 없는 기록일 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이.


이제 토니는 뒤늦게 밝혀진 젊은 날의 횡포가 만들어낸 이 비극의 사태에 대해 당황해하며 베로니카에게 속죄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 또한 부질없는 일인 게 결국 애드리안의 아들은 베로니카의 아이가 아닌 베로니카 모친과 애드리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고, 그 잘난 고귀남 애드리안은 세상이 시시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고 의도치 않게 생겨버린 자폐아 아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현실로부터 도망쳐 버린 그 예전 놀림감의 대상이었던 롭슨과 다를 바 없는 쫄보였던 것이다.


그에게도 그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애드리안에게도, 그리고 그의 청춘을 갉아먹고 달아난 배반의 장미 베로니카에게도 인생은 그렇게 무난하게, 별 다를 것이 흘러가다 끝나게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토니가 가지고 있던 "Sense of Ending"은 틀렸다. 어차피 어느 누구도 그가 가지고 있던 인생은 결국 이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삶의 지혜(?)는 그저 삶을 통달한 척하는 늙은이들의 변명일 뿐이다.


왜 그럴까? 왜 토니의 인생은 그리고 애드리안과 베로니카의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질 못했던 것일까? 줄리언 반즈는 이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인간은 결국 서로에게 뭔가를 끼치고 또 뭔가를 얻게 되는 삶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남이 나에게 행한 작용은 잊거나 개똥철학으로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남에게 행한 일들이 어떤 반작용으로 드러날지 우리는 모른다는 거다. 그리고 그 반작용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지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 밖엔 없다는 거다. 인간은 상호작용하는 존재니까.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로 형성될 수 밖엔 없겠지만 이에 근거한 확신은 곤란하다. 적어도 거시가 아닌 미시의 관점에서, 그리고 개인의 인생에선 더욱 그럴 수 밖엔 없다. 토니는 본인이 저질렀던 기억지 못했던 악행과, 또 이로 인해 빚어진 오해의 결과에 대해서 더 이상 속죄에 연연하거나, 고인이 된 친구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이 또한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이니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직 그에게 주어진 여생을 이혼한 전처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사랑하는 딸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다. 토니는 아니 줄리언 반즈는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인생은 다 그런 거다"라고 말하지 말라고".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매우 특별한 인생"을 겸손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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