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임파서블(The Life Impossible) - 매트 헤이그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으면서 문득 두 문장이 떠올랐다. 하나는 CCM 의 한 구절이었고,
"My heart needs a surgeon, my soul needs a friend."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엉뚱맞게도 30여년 전에 개그맨 김형곤이 유행시킨 유행어였다.
"내비둬, 나 이렇게 살다 그냥 죽을래."
모처럼 읽어보는 489쪽의 장편 소설. 물론 소설의 길이가 깊이와 감동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다만 최근에 소설책들이 단편 보다는 조금 긴 듯한 길이로 쓰여진 것들이 많다보니, 읽는 재미가 조금 떨어진 면이 있었다. 뭔가 좀 더 있었으면 하는데 끝이 나버리니까.
물론 정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 건 이렇게까지 길게 쓸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지루함을 주는 책들. 하긴 이런 경우엔 아예 읽기 자체를 시도하지 않게 되므로 불만의 이유가 되진 못 할 것 같긴하다. 아무튼 최근 단편집 위주의 독서를 하다가 만난 모처럼의 제대로된 장편을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다.
매트 헤이그 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됐다. 이 분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우선 이비자라는 스페인의 휴양지를 배경으로 이처럼 다양한 얘기거리들을 재미있는 서사에 녹여 들려줬다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드는 "독서했다"는 느낌을 주는 경험은 여느 작가가 쉽게 선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 이 어려운 화두를 그것도 죄채감을 안고 살아가는 고통의 문제를 환경, 외계인, 성소수자와 같은 다양한 이슈들에 곁들여 풀어 나간다는 얘기는 일단 듣기만 해도 배가 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은 시도다. 그런데 이 처럼 쉽지 않은 시도를 매트 헤이그는 은퇴한 수학교사 그레이스 윈터스의 기이한 경험을 통해 들려준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바람을 피웠던 것에 대한 남편에 대한 죄책감. 이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72살 그레이스에게 남은 삶은 어서 끝나야먄 힘든 여행의 마지막일 뿐이다. 그녀에게 평온한 여생이란 받을 수 없는 선물일 뿐이다. 그레이스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심지어 갑자기 주어진 선물과 이로 인한 스페인의 휴양지 이비사 섬에서의 여가조차도 그녀에겐 지겨운 과제일 뿐이다.
왜 나에게 이비자 섬의 집을 유산으로 남겼을까? 오래 전 아주 잠시동안 베풀었던 친절의 보상이라기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크리스티나의 유언을 확인하기 위해 그레이스는 이바자 섬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기적같은 경험이 펼쳐진다. 볼수록 마음에 안드는 해양생물학학자 알베르토. 그녀의 딸인 마르타. 크리스티나의 딸인 리케. 그리고 그녀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녀를 선택하고 다가와 신비한 능력을 선물해 준 라 프레센시아. 이들과의 만남과 짧은 동행을 통해 그레이스는 자신의 근원에 자리잡은 죄책감을 마주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운다.
그레이스는 불행하다. 그녀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죄책감 때문에. 평생을 수학교사로 살아온 그녀이고. 수학 처럼 인생은 예측가능하며, 이해 가능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녀의 삶은 그렇게 계산이 되질 않는다. 또 한 편으론 그녀는 죄책감은 본인이 만든 형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수학자니까. 따라서 덜여야만 할 짐이란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를 거부한다. 그녀는 스스로 죄채감이란 형벌을 만들고 그 고통속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녀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자격이 없으니까. 이 부분에서 김형곤의 유행어가 떠올랐던 것 같다. 본인도 아닌 걸 알지만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답답함, 어리석음. 이 건 양심있는 사람의 태도도, 인간이 가져야만할 도리도 아니다. 그냥 본인이 만든 자체 형벌의 자학일 뿐이다.
이런 그레이스에게 구원이 있을까? 그녀에게 남은 여생은 빨리 해치워야만 할 숙제일까, 아니면 하루하루가 귀한 선물같은 시간일까? 답은 본인이게 달려있다. 받아들여야만 한다. 불행의 원인을 자신이 만들어 왔다는 걸. 그리고 도움의 손길을 잡아야만 한다. 사람의 마음엔 몸과 마찬가지로 의사가 필요하고, 또 사람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난 그런 거 필요없다고 외면 하는 한. 산다는 건 고통일 뿐이고, 빨리 끝나야만 할 작업 시간일 뿐이다.
다행히 그레이스는 용기를 낸다. 그녀에게 다가온 변화에 부딪혀 보기로 한다. 그녀를 선택한 초자연적인 존재 라 프레센시아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죄책감이라는 형벌의 틀이 아닌, 선물 처럼 주어진 값진 인생을 살아가기로. 이 후 그녀는 같은 도움을 악용한 악당 아트 버틀러와 맞서 싸우는 모험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 변주의 폭이 너무나도 큰데, 이 같은 반전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건 작가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덕이다. 이 부분에서도 다시 한 번 매트헤이에게 찬사를 보내게 된다.
불행은 결국 이를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그 해방이 시작된다. 내가 나를 용서하는 것 조차 나는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나에겐 아픈 나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고, 병든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내가 아프다는 것,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삶은 그냥 빨리 끝났으면 하는 공포영화일 뿐이고, 롤러 코스터일뿐이다.
이 처럼 귀한 독서의 경험을 안겨준 라이프 임파서블과의 만남에서 옥의 티 처럼 한 가지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한 점은, 사람의 문제를 치유해 주는 도움이 외계 문명에서 왔다는 설정이다. 초자연적인 것. 이를테면 종교 같은 것을 얘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작가는 이를 SF 구조에서 가져왔다. 아무래도 진화심리학이 판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초월적인 존재를 신으로 설정하는 건 부담스러웠던 같다. 혹은 무신론자로서 신의 존재를 거론하는 것이 넌센스라고 생각해서 였을 수도 있고.
그런데 구지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외계문명을 가져올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SF 소설로서의 구성을 고려했던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병든 영혼의 치유를 위해선 초자연적인 힘 정도는 개입해 줘야 한다는 비약적인 논리가 성립될 수도 있다.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듯이 각자가 만든 삶이 형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친구가 있다면,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용기와 고백이 있다면 사람은 충분히 기적같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