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몇 장 읽다가 접어둔 책을 다시 꺼냈다. 사투리가 많아서 당시 책이 쉽게 읽히지 않은 탓이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다. 여행을 떠나면서 챙겨든 책.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해서 아버지의 장례식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며 딸은 아버지의 인생을 다시 사는 듯하다. 아버지가 '민중'과 '혁명'을 입에 달고 살던 지독한 사회주의자, 빨치산이기 전에 사람을 애틋해하는 그저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념 이전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구례에서는 해방 직후에 친일파 숙청도 제대로 못했다고. 해방 직후 당산나무 아래로 끌고 와 죽이려던 참에 누군가 소리친다. 어린 시절 누군가의 병원비를 대주어 목숨을 구한 자이기도 하고, 학병 끌려가려던 사람 손 써주기도 하고. 현장은 금세 미담장으로 바뀐다.”
아버지는 실질적으로 빨치산으로 산 건 ‘4년’이었지만 평생을 낙인찍혀 사회로 나갈 수 없었다. 평생을 무언가와 싸워온 열렬히 고통스러웠던 삶은 이내 ‘죽음’을 통해 해방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 장례식 이후에서야 딸은 인간 아버지를 이해한다. 사람은 다 누구나 사정이 있는 거야라는 아버지의 십팔번 말처럼. 아버지도 딸이 보려 하지 않은 참 많은 사정이 있었다.
초반에는 고집스러워 보이던 인물이 나중에는 애틋해보이기까지 한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작가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인물들이 너무 살아있다 싶었다. 작가는 아버지가 죽은 뒤에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보통의 사람 중에 평생 동안 부모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책을 읽으며 나의 애증의 부모님이 많이 떠올랐다. 울컥하기도 하고. 어쩌면 작가의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이기도 하다. 정치뉴스를 보고 나라탓을 하고 나는 그것을 듣기 싫어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사람을 참 쉽게 믿고 좋아하고 상처받기도 하는 아빠가. 나는 나의 방식대로 그의 따뜻함을 오지랖으로 치부해왔다. 내가 그의 인생을 다시 살지 않는 한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갑자기 그가 치열하게 살아온 세상을 생각하니 애틋하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