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 - 가조도

그리운 과거가 있다는 것

by chiimii

‘가조도’라는 거제의 작은 섬으로 5일 간 여행을 왔다. 작년에 퇴사 후 통영의 욕지도를 여행한 이후 섬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물론 욕지도 여행은 확실히 퇴사버프가 많이 껴있긴했다. 퇴사 한달차에게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곳은 찾기 힘들테니. 서울에서 출발해 가조도까지 도착하는 데 장장 6시간이 걸렸다. 장거리 운전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하고 고맙지만 여행길 차 조수석에 앉아있는 시간이 가장 잡념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잡념에 집중한다는 말이 웃기고 모순적이긴 하지만 아무 생각이 나면 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게 일상에서는 쉽지 않으니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다보면 어렸을 적 어느 순간으로 가 있기도한다. 특히 옛날 노래를 듣다보면 과거의 한 시점이 엄청 그리워지기도 한다. 다시는 그 시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서글프고 허탈하기까지. 예전에는 이런 기분이 들 때 인생 자체가 허무해지면서 왜 인간은 평생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며 살아야할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배우 김혜자선생님 책 <생에 감사해>를 읽었다. 김혜자선생님 역시 과거 그리운 순간들을 나열했다. 그와 함께 덧붙인 말이 “그래서 지금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리워할 순간이 ‘지금’이 되도록. 그 말이 마음에 들어 깊이 새겼다.

어느 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도 그리운 감정 그대로 두는 것이다. 그것이 꼭 과거에 얽매인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요즘 하루하루를 더 열렬히 살려고 노력한다. 내가 말하는 ‘열렬히 산다는 것’은 ‘열심히 산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노는 것도 좋지만 순간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고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을 쫓아가다보면 어느 새 힘만 빠지고 즐겁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사람은 다 저마다의 행복이 있고 각자 그리운 순간도 다 다르다. 먼 훗날 나에게 힘이 되는 오늘을 살고싶다. 돌아보면 미소 지어지는 책갈피가 되는 오늘. 꼭 웃음만 나오는 오늘이 아니어도 된다. 풍요로운 하루가 아니어도 되고, 대단한 것을 해낸 하루가 아니어도 된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걸 더 간절하게 이뤄내는 하루, 내 작은 우울함을 극복하고 편안하고자 애쓴 하루. 그런 날들이 계속 되기를.

가조도의 5일은 충분히 그런 날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통발에 뭐가 있을까 설렌다. 다시 던지면서 내일의 기대를 남겨둔다. 새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루프탑에서 가져온 책 <테스>를 읽으며 테스의 삶에 온전히 몰입한다. 좋은 글귀에 인덱스를 붙인다. 늘지 않는 실력에도 영어공부를 하느라 팟캐스트와 미드를 꾸역꾸역 듣고, 글을 쓰며 다이어리 해야할일에 줄을 긋고 뿌듯함을 느낀다. 조금 불편할 수 있었던 누군가의 행동도 좋게 해석하려 애쓴다. 친절하고 따뜻한 말과 마음은 오래 담아두려 애쓴다. 언젠가 우리의 가조도 여행도 퇴사버프 받은 욕지도 여행만큼 그리운 기억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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