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우리의 행복을 미룰 수 없다(2)-1

여행의 의미

by chiimii

살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중 여행은 가장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날씨, 비행기 연착, 소매치기, 긴 입국심사 등 원치 않는 상황을 맞닥뜨려야 한다. 사실 그런 이유로 나는 여행지를 많이 편식하는 편이다.


뉴욕3박 칸쿤6박의 여행을 떠나면서 며칠 전부터 계속 뉴욕의 날씨를 확인했다. 아니나다를까 뉴욕 3박 중 2박은 비 예보가 있었다. 나는 여러 기상 사이트를 비교하며 비 예보가 없기를 바랐다. 비싼 돈 주고 가는데 비 와서 사진도 못찍고 기분도 못 내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계속됐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전전긍긍하고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출발 당일. 10시 출발 비행기는 연료 문제로 20분 지연되고 기체 점검으로 40분 지연되어 11시가 넘어 출발하였다. 이것 역시 나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도착해서 미드타운으로 가는 셔틀도 제때 타야하고 미리 봐둔 곳에서 점심도 먹어야 하고 브라이언트파크에서 아이스링크도 타야 했다. 계획에 차질이 갈까 조금 걱정되었다.


예상보다 한시간 늦게 도착했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비가 왔다. 셔틀 기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달동안 비가 안오다가 비가온다고 한다. 심지어 그 한달 간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고. 마음이 아팠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손해보는 기분일까. 초조한 기분까지 든다.


뉴욕은 비가 오면 차도 막히고 이것저것 틀어지는 예민해지는 도시라고 한다. 타임스퀘어로 향하는 차에서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 오는 뉴욕이 아쉽긴하지만 운치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뿌연 연기로 가득한 뉴욕감성에 젖어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이것 또한 즐기자고.



그것도 잠시 차에서 내려 호텔로 가는 길. 날씨는 너무 춥고 비바람 세차게 불고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는 우산끼리 부딪치고. 무단횡단하는 사람들과 쉴새없이 울리는 차들의 크락션 소리. 화려하고 찬란한 타임스퀘어 거리를 핸드폰으로 찍다가도 우산 속에 숨어 비를 피하고 사람을 피하고 걷다 보니 뉴욕을 즐길 기분이 싹 가실만큼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시차적응은 안되고 날은 얼마나 추운지. 체크인 후 무겁고 축처진 몸을 이끌고 미리 짜둔 계획을 지키겠다고 조스피자를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조스피자는 줄이 길었고 그 근처에 있던 99센트 피자집들은 들어가기 꺼려질 만큼 조금 무서운 분위기였다. 뭐가 그렇게 두려워 도망치는지 모르겠다. 유튜브나 블로그 보면 여자 혼자서도 잘 다니던데. 나는 겁이 많다. 내가 살아온 길은 항상 이랬던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안전제일주의고 나쁘게 말하면 두려움에 시작조차 안하고 도망가는 길.



근처 사람 없는 깔끔한 브리또 가게에서 그저 그랬던 브리또를 먹고 브라이언트파크로 향했다. 구글지도로 봤을 때는 다 가까워보이고 쉬워보였는데 실제 타임스퀘어 거리는 블록마다 다 똑같이 생기고 구글맵도 gps를 잘 못 찾아 길찾기가 힘들었다. 뉴욕의 겨울, 뉴욕의 크리스마스와 그 낭만을 즐기겠다고 아이스링크 예약까지하고 왔는데 춥고 비오는 것을 핑계로 사진만 찍고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4시반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고 오늘은 온전히 쉬기로 하여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다.



뉴욕 여행 중 시간에 쫓겨 이곳저곳을 제대로 돌아다니지못하는 꿈을 꿨다. 밤 12시가 되자 눈이 떠졌다. 나는 왜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가. 내가 바꿀 수 없는 이런저런 것들을 핑계로 삼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앞서 가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것들을 눈 감는 건 아닌지. 여행은 나에게 그런 것 같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수많은 상황에서 온전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날씨도 소매치기도 인종차별도 아니다. 내 의지와 내 기분이다. 그것은 오롯이 내 몫이고 내 선택이다. 추위와 두려움은 핑계! 난 뉴욕에서 먹고싶은 것, 가고싶은 곳, 하고싶은 것이 엄청 많다! 나중에 또 오면 되지라고 미루기보다는 지금 다 해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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