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차관과 설립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 업그레이드된 수파노봉 국립대학
루앙프라방 수파노봉 대학에 지었던 버섯 종균 재배사
아내가 진행했던 한국어 과정 수료식
예전에 라오스 국립대학 농대에서 학생들에게 영어 수업을 맡아 가르쳤었다.
당시 예전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한국에 와서 도왔던 것을 롤모델로 하여 한국과학기술부에서 주관한 KICOS(개도국과학기술지원단)으로 라오스의 국립대학에 가서 3년간 가르쳤다.
그런데 라오스는 당시에도 공산국가였고 국립대학 학생은 갑자기 행사에 동원되는 일이 많았다.
1교시 수업은 8시부터 있었는데 어떤 날은 일찍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한 명도 없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갑자기 행사가 있어서 학생들이 전부 거기에 참석하게 되면 갑자가 수업이 취소되었다.
나름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고 아침 일찍 가서 수업이 취소되면 나는 속상하기보다 오히려 속으로 기뻤다.
왜냐하면 그날 준비한 수업을 다음에 하면 되기 때문에 수업 준비 부담이 그만큼 줄기 때문이다.
내가 요령을 많이 피우는 성격이라기보다 그만큼 라오스 대학생들에게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시간을 생각하면 어떻게 했었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라오스 농대에 있을 때 그곳에서 수업 외에 버섯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학이 있던 라오스의 옛 수도인 루앙프라방에는 버섯 종균을 재배하는 시설이나 기술이 없었다.
버섯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있는 동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버섯 종균 재배를 택했다.
그 과정에서는 당시에 코이카 농업 프로젝트로 라오스에 와 있던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루앙프라방에 있던 농업 단원과 수도에 있던 농업 단원의 도움을 통해 버섯 재배 기술을 익히고 농대에 버섯 종균 시설도 지었다.
아내는 라오스에 있을 때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한국어 능력 평가 시험도 치르게 했는데, 그 이후에 라오스에 세종학당이 들어가기도 하였다.
또 우리가 라오스에 있을 때 정말 헌신적인 마음과 라오스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도우려는 분들과 밤을 지새우며 같이 나누었던 추억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라오스에 있었던 시간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국가대표였다고 자부한다.
예전에 원조가 없으면 살 수 없던 나라가 이제 많은 나라를 돕는 원조하는 나라가 된 것에 작은 부분이나마 참여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이었고 추억인지 모른다.
이번에 잼버리에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정부와 기업, 교회, 시민들까지 나서서 유종의 미를 잘 거두웠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에 대해서 호의를 가지고 친절을 베푸는 민족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여겨진다.
최근에 한류는 단순히 K팝이나 K콘텐츠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한국인이 외국에 가서 단순히 돈만의 원조가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그 나라 사람들을 도우려고 한 영향도 크다고 믿는다.
지금도 전 세계에 한국인이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으로 인해 기적 같은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금도 코이카(KOICA)등을 통해 많은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 그들이 가진 열정과 기술로 현지인에게 다가가 그들을 섬기며 친구가 됨으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코이카뿐 아니라 많은 민간 외교 단체를 통해 나간 한국인과 한국 선교사들은 그 나라에서도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현재 한국은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가 없으면서 전 세계에 나가서 도우며 원조를 하는 흔치 않은 나라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한국인이 한국에서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또 선진국에만 가려는 것이 아닌 더 넓은 시야를 가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가서 진심으로 그들을 도우려고 할 때 그 각 사람의 인생도 빛이 나고, 대한민국도 세계에 더욱 사랑받는 나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