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으로 덕수궁 안을 걸었다.
최근에 시청 쪽에 일이 있어 계속 가면서 점심 식사 후에 덕수궁 돌담길 주변을 자주 산책했지만 덕수궁 안을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다.
덕수궁이 왕궁인 듯 아닌듯한 역사는 다음과 같다.
덕수궁은 원래 왕궁이 아니었으나 임진왜란 때 왕궁이 다 불에 타서 1593년부터 왕궁으로 사용하고, 선조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갔다가 한양으로 환도한 뒤 덕수궁에 머물렀다고 한다.
1623년 인조 때부터는 다시 왕궁이 아니었다가,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아관파천 후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규모도 다시 넓혔다고 한다. 그리고 고종 황제는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후, 왕궁을 창덕궁으로 옮긴 후에도 이곳에 거처하였는데, 이때부터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동안 덕수궁 돌담길을 산책로로만 걸었지 덕수궁의 기구한 역사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랐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덕수궁 안을 산책하면서 어쩌면 조선의 기울어가고 무너져가는 역사의 터전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덕수궁은 또한 조선의 옛 모습과 근대 개회기의 모습이 공존하는 장이기도 하다.
오늘 짧은 시간에 도시의 빌딩 숲에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말기 산책을 하고 온 듯하다.
오전에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분주했으나 점심에 잠시 덕수궁 산책을 하니 마음이 숙연해지고 차분해진다.
경복궁에서부터 광화문을 거쳐 남대문에 이르는 길은 조선 시대를 관통하여 한국 근현대사 발자취의 길이다.
지금도 광화문에서 시청을 거쳐 남대문에 이르는 길은 때로는 갈등의 장이요, 때로는 화합의 장이며 오늘 대한민국 정신의 물줄기가 흐르는 길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지금은 아름답게 가꿔져 있지만 기울어가던 나라의 운명과 함께 했던 왕들의 거처였던 왕궁, 덕수궁.
그곳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절뚝이며 움직이는 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다.
우리의 인생도, 그 인생들이 모인 한 나라의 운명도 그토록 딛고 서 있기도 어려운 시간들이 있지 않은가?
비둘기를 한참을 바라보며 나의 인생도, 이 나라도 생각하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고종이 가베(커피)를 마시던 정관헌 앞에서 들고 간 커피를 마셨다.
조선 말기의 나라 상황을 생각해 보면 커피를 마시면서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맑은 하늘 아래 덕수궁은 오늘 전혀 괴롭거나 슬퍼 보이지 않았다.
날이 좀 더 선선해지면 조금 더 역사 공부를 하고서 다시 따듯한 커피 한잔을 들고 정관헌 앞을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