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 사람들은 외로움, 혹은 고독을 느낀다.
사실 비슷한 뜻을 품고 있지만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사전적으로 외로움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고,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으로 되어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하지만 나의 경우 외로움은 피하고 싶지만, 고독은 이따금 즐긴다.
외로움은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지만, 고독은 내가 잠시 세상과 단절하고 나와 대면하는 느낌이다.
살면서 속도보다 방향을 잘 재설정하며 가는 것이 중요한데 고독은 내가 가는 방향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래서 외로움은 나를 피폐하고 초라하게 하지만, 내가 누리는 고독은 신선하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한다.
중학교 때 허리를 다쳐 학교도 가지 못하고 병원과 집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당시는 유튜브나 핸드폰이 있는 때도 아니어서 그나마 누워서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때 책을 읽는 습관과 혼자 누워서 소설 속의 장면들을 상상하며 사색하는 즐거움을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 누워서 읽은 수백 권의 책을 바탕으로 시를 쓰거나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후로 혼자 고독을 즐기는 시간에 주로 독서를 하거나 묵상을 하고, 그 묵상을 글로 쓴다.
묵상을 통해 나를 창조하시고 내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과 소통하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 시간을 갖는다.
위대한 작가나 철학가들도 자신과 마주하는 고독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런 영향력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입에는 달지만 몸을 망가뜨리는 불량식품과 같은 왜곡된 가치관의 불량식품 같은 것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혼자 외로움을 달래려 유튜브나 OTT의 드라마를 탐닉하다 보면 불량식품 같은 내용이 마음과 영혼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간에 묵상과 독서, 그리고 글을 쓰며 나와 대면하다 보면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된다.
가끔 영화를 봐도 혼자 보고, 산책도 혼자 할 때가 많다.
영화를 본 후에, 그리고 산책을 하면서 묵상을 하고 사색을 하기 위해서이다.
무언가 내 시간을 투자하고 아무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마음이 공허하고 허무하다.
하지만 묵상과 사색을 통해 무언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고, 깨닫게 될 때 마음에 희열이 찾아온다.
최근에는 혼자 조용한 시간에 글을 쓰는 시간이 드러난다.
글을 쓰다 보면 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 지를 알게 된다.
내 안에 듣고 본 정보들과, 그것을 가지고 사색한 정리된 내 생각이 없으면 글을 쓰기 힘들다.
더 의미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더 혼자 있는 시간에 의미 있는 정보를 접하고, 독서와 사색을 하게 된다.
젊어서 공허한 외로움이 가득할 때는 그 외로움을 채워 줄 관계를 갈구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을 만나 웃고 떠들어도 그 마음에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은 경험들은 있지 않은가?
이제는 정말 마음을 나눌 사람들과 언제든 기꺼이 만나지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고독 가운데 내와 대면하며 깊이 사색할 때 더 마음이 풍성하고 누구를 만나고 나에게서 흘러나올 것이 생기게 된다.
외로움이 아닌 고독은 점점 나에게 친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