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와 사막 같은 삶의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보기
UAE(United Arab Emirates)는 이름에서처럼 아랍의 7개의 토후국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나라이다.
우리가 잘 아는 두바이도 그중에 하나이고 가장 큰 토후국은 아부다비이고 현재 수도이기도 하다.
이곳을 소개하는 것은 2013년부터 약 4년간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살았었기 때문이다.
아부다비에서 살던 곳은 대문만 열면 사막이었었다.
두바이나 아부다비 대부분은 사막에 신기루와 같이 도시를 건설한 곳이다.
살던 곳 집 앞은 사하라 같은 사막은 아니지만 앞으로 도시가 형성될 예정인 사막이다.
그래서 모레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대문을 열고 닫기 위해 잠시 내린 동안에 온몸에 모래바람을 맞는데 특히 머리에 모래가 가득하게 된다.
사막의 땅에서 특히 여름의 햇빛은 가히 살인적이다. 사실 선글라스를 쓰고도 하늘을 쳐다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아부다비에 있을 때 사막인 땅보다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았다.
사막의 땅에는 생명이 없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은 땅의 모든 생명의 필수요소이다.
우리가 살면서 분주하게 매일을 살다 보면 우리의 시선은 땅을 향하기가 쉽다.
눈을 뜨면 무엇을 먹을지, 오늘 처리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오늘 만날 약속과 그 관계 속에서 오는 감정들에 치우치다 보면 마음과 우리의 시선은 땅을 보게 된다.
모두 나름대로 열심히 살지만 자신이 사는 삶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런대로 가진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결핍을 느끼며 가지지 못한 것에 불만하며 산다.
사막과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메마르고 생기를 잃어가지만 그것이 사막의 특성이다.
그런데 사막에도 비가 오는 계절이 있다. 그 대단하지도 않은 비가 오거나 아침에 이슬이 내리는 때에는 그 사막에도 어디선가 꽃이 피기도 하고, 식물이 자란다.
삶이 메마르고 무기력해갈 때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필요하고, 또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과 해를 가려주는 구름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의 인생은 각기 다른 해바라기와 같아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삶을 살더라도 하늘의 소망과 생명력이 필요하다.
2016년에 미국의 한 연구진이 해바라기에 대한 연구를 했다. 해바라기는 왜 해를 향하는지에 대한 연구다.
연구의 결론은 해바라기가 해를 쫓아다니는 것은 빛을 최대한 받아 광합성 효율을 높임으로써 생장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줄기의 축이 해를 향해야 수직 방향으로 달리는 잎이 더 많은 햇빛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바라기는 광합성 효율을 위해 해를 따라다니지만 우리는 살 소망을 얻기 위해 하늘을 본다.
사막에서 살면서 언제나 하늘을 바라본 것은 하늘을 바라볼 때 소망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막과 광야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밤이 되어도 더욱 주목해서 하늘을 바라본다.
별빛을 통해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인도함을 받고 하늘의 별빛이 외로움에 친구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사막에 와서 내가 뭐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무기력해지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러면 새벽이나 구름이 끼고 선선해지는 때에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본다.
평생 하늘을 바라봐도 하늘에 그려진 구름의 모습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고 늘 새롭다.
그 새로움은 내 마음에 찾아오는 무기력을 씻어내고 새로운 활력과 소망을 가져다준다.
우리 삶은 실제로 사막에 있어야만 사막이 아니라 마음과 정서가 메마른 사막에 있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마음도 소망도 메마른 사막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TV나 핸드폰 화면이 아닌 하늘을 바라봐야 할 때다.
그 화면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우리를 울리기도 하며 웃기기도 하고 화나게도 하지만 조화와 같다.
조화를 보아도 멋지고 아름답게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사막에 핀 꽃처럼 생명의 기운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메마른 그때에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그 하늘에서 촉촉한 이슬이 마음에 내린다.
내 인생에 새로운 광야를 통과하며 나는 다시 하늘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