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구매에 대한 변명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충동구매에 대한 변명
새벽에 사무실에 와보니 어제 주문한 ‘블랙 스네일 크림’이 와 있었다.
사실 이미 얼굴에 바르는 올인원 로션과 크림이 여러 개 있고, 아직 뜯지도 않은 로션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최근에 얼굴이 푸석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으면서 더 신경을 쓰게 되고, 마치 이걸 사용하면 마법처럼 푸석함이 사라질 것 같은 현혹을 당하면서 결국 구매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
사실 이러한 소비는 단순히 화장품 하나를 더 산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에는 현대 철학의 거대한 명제와 디지털 문명이 만들어낸 충동의 메커니즘이 아주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고 항변하고 싶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난해한 문장은 내가 블랙 스네일 크림 구매 과정에서도 작동하는 말이다.
내가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달팽이 점액 여과물’이라는 화학적 성분이 아니다. 집에 이미 있는 로션들로도 보습이라는 생물학적 기능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움직인 결정적 방아쇠는 “최근 얼굴이 푸석해 보인다”는 타인의 한마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내면에는 ‘결핍’이 발생했다고 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는 ‘푸석하고 생기 없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시선이 욕망하는 ‘생기 있고 관리 잘 된 사람’의 이미지를 갈망하게 된 것이다.
즉, 내가 구매한 것은 크림이라는 ‘물질’이 아니라, 타인이 나를 좋게 봐주었으면 하는 ‘욕망’ 그 자체를 산 것이다. ‘이것만 바르면 마법처럼 변하겠지’라는 현혹은, 이 상품이 내 얼굴을 타인이 욕망할 만한 상태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무의식적 믿음에서 비롯된다. 뜯지도 않은 채 쌓여있는 로션들은 과거에 내가 샀던 또 다른 욕망의 껍데기들인 셈이다.
문제는 이 욕망의 과정에 ‘디지털 기술’이 개입하면서 발생한다. 과거에는 누군가에게 “얼굴이 상했네”라는 말을 들으면, 속상해하다가 며칠 뒤 화장품 가게에 들르거나, 그사이에 잠을 더 자는 것으로 해결했다. 욕망과 충족 사이에는 물리적인 ‘시간의 틈(마찰)’이 존재했고, 그 틈 사이에서 이성이 작동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디지털 세상은 이 ‘틈’을 삭제하고 있다. “푸석하다”는 말을 듣고 거울을 본 순간 느낀 불안감은, 스마트폰 속 화려한 상세 페이지와 리뷰들이 주는 환상(“이것만 바르면 20대 피부로”)과 맞물린다. 그리고 ‘내일 새벽 도착’이라는 문구는 마지막 남은 이성의 브레이크마저 고장 낸다.
“지금의 이 불안을 내일 아침이면 해결할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지 마세요, 지금 당장 욕망을 해소하세요”라고 부추긴다. 클릭 한 번으로 불안을 결제하는 행위는 뇌에 즉각적인 도파민을 공급한다. 물건을 받아서 바르는 행위보다, ‘주문하는 순간’에 느끼는 안도감이 더 크다. 그렇기에 막상 물건이 도착하면 그 효용은 급격히 떨어지고, 또 다른 결핍을 찾아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메커니즘에 의해 구매한 로션, 다이어트 보조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나 사실 온라인에 광고나 리뷰 현혹되어 산 제품 중 진짜 효과를 보고 만족한 것은 거의 없다.
사무실 책상 위의 택배 상자는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인정 투쟁)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디지털 자본주의는 그 흔들림을 포착해 1초 만에 상품을 들이민다.
크리스틴 로젠이 지적했듯, 우리는 기다림과 숙고라는 ‘경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내 피부가 왜 푸석해졌는지, 내 삶의 피로가 어디서 오는지 깊이 들여다보는 대신, 검색창에 ‘피부 좋아지는 법’을 치고 ‘구매하기’를 누름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고 착각한다. 이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소비’ 일뿐임을 알고도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자책하지는 않겠다. 우리는 모두 이 거대한 욕망의 구조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다만, 사무실에 도착한 그 크림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다짐을 한다.
‘다음번 충동이 찾아올 때는,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잠시 멈추어 보자.’
집에 있는 뜯지 않은 로션을 먼저 다 쓰기로 결심하는 것. 타인의 “푸석하다”는 말에 크림을 사는 대신, 오늘 밤 일찍 잠자리에 들거나 물 한 잔을 더 마시는 것. 그것이 디지털 세상이 부추기는 속도에 저항하고, 타자의 욕망이 아닌 ‘나의 필요’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