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자가 역사를 선점한다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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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자가 역사를 선점한다


오늘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과 PC를 열어 무언가를 기록한다.

점심에 먹은 정갈한 식사 사진을 SNS에 올렸거나, 퇴근길의 단상을 블로그에 적었거나, 책을 읽고 서평을 기록하거나, 혹은 뉴스 기사에 분노 어린 댓글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파편적인 일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E.H. Carr)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와 이 광경을 목격한다면, 그는 아마도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의 개정판 서문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디지털 시대의 개인들은 지금, 전에 없던 방식으로 거대한 '잠재적 역사'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듯, 카는 19세기 랑케식의 실증주의 사관, 즉 "사실 그 자체가 말하게 하라"는 객관성의 신화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에게 역사적 사실이란 광활한 과거의 바다에서 건져 올려져, 역사가라는 요리사의 도마 위에 오른 '생선'과도 같았다.

수많은 과거의 사건 중 역사가가 자신의 현재적 문제의식에 비추어 가치 있다고 판단하여 '선택'한 것만이 비로소 역사의 무대에 오른다. 선택받지 못한 무수한 사실은 그저 잊힌 과거로 사라질 뿐이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된다고 했다.


이 고전적인 통찰을 21세기 디지털 환경에 대입해 보자.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혼란스러운 '시장의 좌판'이 되었다. 과거에는 소수의 권력자나 지식인만이 기록을 남겼고, 역사가들은 그 제한된 사료 속에서 사실을 선별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기록 도구를 들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데이터로 변환하여 클라우드라는 좌판에 진열한다.


카의 이론에 따르면, '선택된 사실'만이 역사가 된다. 그렇다면 미래의 역사가가 21세기를 재구성하려 할 때, 그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당연하게도 그들은 접근 가능한 기록, 즉 데이터로 남아있는 흔적들을 가장 먼저 뒤질 것이다.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만 기록하지 않는 사람과,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활동을 온라인에 송출하는 사람 사이의 역사적 운명이 갈린다. 오프라인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활동을 많이 했다 한들, 그것이 디지털 형태로든 아날로그 형태로든 기록되지 않는다면, 미래의 시점에서 그 삶은 '역사적 사실의 후보군'에조차 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SNS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헤비 유저'들은 스스로를 미래의 역사적 사료로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기록이 비록 주관적이고 편향되었을지라도(카는 어차피 모든 기록은 주관적이라 했다), 미래의 역사가에게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더없이 생생한 1차 사료가 된다.

결국 디지털 시대에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미래의 역사가가 수행할 '선택'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위다. 나의 기록이 미래 역사가의 현재적 문제의식과 공명할 때, 나의 평범한 일상은 거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선택된 사실'로 격상될 수 있다.


물론 모든 기록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록하지 않은 것은 결코 역사가 될 수 없다.

이것이 E.H. 카가 우리에게 주는 현대적 교훈이다.

오늘 내가 무심코 올린 블로그 포스팅 하나는 먼 훗날 2020년대를 규정하는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키보드로 미래의 역사책에 들어갈 각주를 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브런치에 쓰는 글들, 블로그에 쓰는 글도 역사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니 나는 역사에 참여한다는 마음으로 기록한다. (착각은 거창해도 자유다.) 침묵하는 다수보다, 기록하는 소수가 역사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올릴 때 역사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을 더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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