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도시, 방콕을 즐기는 방법

세 식구 태국 여행 이야기

by 피자치킨피치

어제는 룸피니 공원을, 오늘은 벤짜낏띠 공원을 달렸다. 신나게 달리고 돌아오는 길에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음식 시장에 들렀다. 태국은 집에서 음식을 조리해 먹기보다는 밖에서 사 먹거나 포장해 와서 먹는 일이 더 많다고 한다. 한창 출근 시간이 맞물려 있는 아침 시간이라 대부분 출근 복장을 갖춘 채로 음식을 포장해 갔다. 포장 방법은 어느 가게에서 구입하더라도 대동소이하다. 음식 중 밥이나 고기, 채소 등 굵직한 건더기류는 종이 상자에, 죽이나 국물류는 비닐봉투에 담아서 준다. 포장 비닐 입구는 한 개의 고무밴드로 순식간에 단단히 여며주는데 대충 묶은 것 같아 보여도 그렇지 않았다. 거꾸로 들어도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다. 고무줄 매듭도 기발한데 뭉친 비닐 입구가 U자형으로 구부러지도록 묶어서 고무줄 일부를 살짝 당기는 동작만으로 입구가 한 번에 열렸다. 음식 포장 방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나라의 식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시장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아침거리로 뭐가 좋을까 둘러보다 달콤 짭짤 꼬릿한 냄새에 이끌려 카오카무(족발덮밥)를 하나, 먹음직스러운 쪽(죽)을 하나 샀다. 뭐에 홀린 듯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 앞에서도 한참을 망설이다 고양이가 수놓아진 동전 지갑도 하나 샀다. 고양이에게 푹 빠져 있는 피치에게 줄 깜짝 선물이다. 가격표는 따로 없었는데 무려 250밧을 부르더라. 딱 봐도 관광객에게 너무 비싸게 후려치는 느낌이 들었지만 생각보다 완고한 태도에 못 이겨 230밧(약 1만 원)으로 흥정을 마쳤다. ‘살까 말까 할 때에는 사자’는 원칙을 떠올리며. 얼른 돌아갈까 하다가 커피 한 잔 생각이 간절해 특별한 커피 한 잔을 샀다. 듣도 보도 못한 오렌지 커피인데 새콤달콤한 오렌지청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아이스커피를 올려주었다. 가격은 60밧으로 저렴했지만 맛은 아주 좋았다. 신나게 달린 뒤 시원한 커피 한 잔이라, 낭만 터지는 아침이 아닐 수 없다.


호텔에 도착해 둘의 단잠을 깨우려 일부러 요란하게 방 문을 열었다. 웬걸, 예상과 달리 뭉미도 피치도 이미 깨어 있었다. 피치는 배가 고팠었는지 내 양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뒤이어 꺼낸 깜짝 선물, 동전지갑을 보자 더 크게 기뻐했다. 음, 역시 사길 잘했다. 포장해 온 카오카무와 쪽 둘 다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특히 쪽 위에 토핑으로 올린 날달걀이 인상적이다. 굉장히 진한 노란색이었는데 전혀 비리지 않고 아주 고소했다. 두 그릇을 셋이 나눠 먹으며 너무 부족하게 사 왔나 싶을 정도로 싹싹 긁어먹었다.


식사 후 오늘도 또 수영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알차게 물놀이를 즐기고 택시를 불러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점심을 먹을 식당은 바로 일찌감치 예약해 두었던 광동 요리 전문점이다. 북경오리 요리를 기가 막히게 하는 미슐랭 가이드 추천 식당이기도 하다. 여행 한 달 전쯤에 모 유튜브에서 보고는 우리 셋 모두 꼭 가보자며 입을 모았었다. 마침 한 여행 관련 앱에서 이 식당의 금액권을 할인해서 팔길래 넉넉히 사 두었다. 이렇게 여행 전에 미리 사 두면 과거의 내가 카드로 결제하고 이미 여행 중에는 카드값을 갚은 상태이므로 마치 공짜로 먹는 느낌이 든다. 비행기 표도 미리, 숙소 결제도 미리, 이렇게 식당 비용도 미리… 그러면 여행을 하고 와서도 어? 카드 값이 별로 안 나왔네?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조삼모사잖아. 나도 안다. 멍청해 보이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식당 이름은 와록(Wah Lok), 칼튼 호텔 스쿰빗 건물 2층에 위치한 곳이다. 분위기는 쾌적하고 여유로웠고 직원들의 친절함은 과하지 않은 품격이 있었다. 피치는 미리 여기 올 때 자기 의상을 골라두었을 정도로 이런 고급 레스토랑을 상당히 좋아하고 또 즐길 줄 안다. 여행의 목적 중 하나가 바로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데에 있으므로 우리는 여행을 할 때 항상 골목길 현지 식당과 더불어 고급 식당도 코스에 넣곤 한다. 나와 뭉미, 특히 피치의 다양한 문화 경험을 위해 열심히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와록에서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메뉴는 바로 북경오리 요리이다. 통으로 구워낸 오리의 껍질 부분을 얇게 벗겨내어 얇은 밀전병 위에 파채, 오이, 달콤한 춘장을 얹어 먹는다. 얇게 썰어낸 껍질은 바삭한 겉껍질과 부드럽고 촉촉한 지방층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곁들임 음식 없이 그 자체로만 즐기기에도 좋았다. 그런데 전병에 싸 먹는 순간 그 맛은 더 다채롭게 느껴졌다. 달콤함, 고소함, 약간의 새콤함, 짭짤한 맛이 혓바닥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느껴지고 바삭, 말캉, 아삭, 쫀득한 식감이 어우러졌다. 과연 중국 황제가 즐겨 먹었다는 황실 요리다.


북경오리를 주문하면 껍질 요리 외에도 살코기로 만든 볶음 요리도 준다. 껍질 요리만큼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꼬들꼬들, 짭짤한 게 맛있었고 또 육즙 가득한 샤오롱바오도 좋았다. 평소 만두를 별로 안 즐기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길 꺼려하던 피치도 분위기에 동화된 건지 나오는 음식마다 쌍엄지를 치켜들며 맛있게 먹었다. 디저트로 주문한 두리안 아이스크림 튀김도 맛있게 먹었다. 아이스크림이라는 방법으로 온도를 낮추어 두리안 특유의 냄새를 억제했다는 점이 이 요리의 기발한 포인트이다.


점심 식사 후, 대낮의 더위를 피하려 몰 투어에 나섰다. 새로 생긴 엠스피어부터 엠쿼티어, 엠포리움을 연달아 둘러보는데 아무리 실내가 감각적으로 잘 꾸며져 있더라도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다. 더위에 지친 피치를 아이스크림으로 달래주고 뭉미와 나도 급한 대로 카페인 수혈을 하고는 바로 룸피니 공원으로 향했다.


역시 공원이다. 공원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체감 온도가 확 낮아졌다. 기운 없던 피치도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저만치 앞장서서 걸었다. 어제 아침부터 룸피니공원의 도마뱀과 고양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기대감을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길가에 벌러덩 누워 있는 순한 고양이들은 사람의 손길을 즐길 줄 알았다. 고양이 키우기가 인생 목표인 피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큼직한 도마뱀과 새,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 바닥에 누워 단잠에 빠진 사람, 엎드려 책을 읽는 사람, 앉아 쉬는 사람,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춤추는 사람, 요가나 태극권을 수련하는 사람, 고양이를 찾아 공원을 누비는 어린이, 어린이를 놓칠 새라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어른이 있는 곳. 룸피니 공원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저녁 식사를 하러 실롬역 근처 Ginger farm kitchen으로 갔다. 딱히 찾아간 곳은 아니었는데 여기도 미슐랭 가이드 추천 식당이었다. 가게 이름에 생강이 들어가긴 하지만 음식에서 생강이 도드라지진 않았다. 그저 적절하고 충실한 향신료 역할을 톡톡히 했을 뿐이다. 돼지껍질 튀김 샐러드도, 선지가 들어간 똠얌 국도, 모닝글로리 볶음과 망고 스티키 라이스까지 뭐 하나 입맛에 맞지 않는 게 하나도 없었다. 새삼 방콕이 미식의 도시임을 깨닫는다. 어딜 가도 다 입맛에 잘 맞았다.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한식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던 곳은 태국이 유일하다. 지난번에도 그랬는데 역시 이번에도 그랬다. 우리 세 식구 모두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벌써 방콕을 떠나 꼬따오로 가는 날이다. 여행지의 하루는 정말 쏜살같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