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따오, 여기가 태국의 전라도여?

태국 꼬따오의 음식 이야기

by 피자치킨피치


꼬따오를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전라도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음식 하면 전라도를 으뜸으로 치듯, 꼬따오 음식도 굉장히 맛있었기 때문이다. 아, 물론 ‘꼬따오는 맛있는 섬‘이라는 사실에 공인 기관의 검증 또는 유명인의 평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꼬따오는 전라도 같은 섬이네!’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저 말을 뱉었을 때, 나머지 사람들은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맛있는 섬 꼬따오,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꼬따오 식당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바로 ‘폼 쏨땀‘이다. 포장으로 한 번, 직접 가서 두 번, 총 세 번이나 먹었다. 중간에 숙소를 북부로 이동하지 않았더라면 세 번, 어쩌면 네 번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채로운 먹거리를 즐기는 것에 여행의 목적 중 상당수를 할애하기 때문에 한 번 간 식당을 웬만해서는 또 찾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게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폼 쏨땀의 대표 메뉴는 바로 ‘쏨땀’이다. ‘쏨‘은 ‘신맛‘, ‘땀‘은 ‘찧는다‘는 뜻이다. 채 썬 파파야를 기본으로, 절구에 찧은 각종 향신료를 섞은 음식이다. 향신료는 고추, 땅콩, 라임, 남쁠라(생선소스) 등 어느 식당을 가도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식당마다 그 비율이 조금씩 다르고, 결국 그 작은 차이로 맛집 여부가 결정된다.

쏨땀의 매력은 온 혀를 가볍게 자극하는 다채로운 맛에 있다. 짭짤한 감칠맛 위에 매콤과 새콤이 각각 원투 펀치를 날리고 마지막에 달달한 여운이 남아 다음 젓가락을 재촉한다. 식감은 또 어떤가. 아삭한데 동시에 쫄깃한 탄력이 느껴지는 파파야와 당근, 고소하게 씹히는 땅콩과 묘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콩깍지, 부드러운 토마토가 각기 입 안에서 춤을 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던가, 여기는 쏨땀이 가장 맛있었지만 쏨땀이 아닌 다른 음식들도 모두 다 맛있었다. 피치가 좋아하던 ‘카오 니아오 마무앙(망고 스티키 라이스)‘, 사실 이 메뉴는 어딜 가도 비슷한 맛이긴 하다. 코코넛밀크를 섞어 달콤하고 쫀득한 찹쌀밥에 튀긴 녹두가루로 고소함을 더하고, 숭숭 썬 망고를 곁들여 먹는다. 우리 음식 문화엔 다소 낯선, 과일과 밥을 같이 먹는 그런 음식인데 이게 또 묘하게 괜찮다. 태국에서는 디저트 개념으로 식사 마지막에 많이 먹는다. 여기 카오 니아오 마무앙은 맛도 맛이지만 망고를 두 개나 썰어 넣은 푸짐한 양이 또 매력 포인트이다.

족발 무침은 또 어떠한가, 적당히 쫄깃하고 야들야들한 식감에 짭짤하니 간이 딱 좋은 족발에 이곳만의 특제 소스를 끼얹어 맵-단-새콤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짭짤한 소스에 적당히 볶아 아삭한 식감을 살린 공심채(모닝글로리) 볶음도 역시 기가 막혔다. 거기에 손가락만 한 오징어 다리를 아낌없이 넣은 볶음밥까지… 여기 음식은 정말 어느 것 하나 뺄 것 없이 모두 다 아주 맛있었다.


우리가 꼽은 꼬따오 맛집 넘버 투는 바로 어느 시간에 가도 늘 만석에 줄까지 서야 했던 995 Roasted Duck이다. 이곳도 두 번이나 가서 먹었다. 통째로 구운 오리를 직원 예닐곱 명이 쉴 틈 없이 썰고 자르며 준비를 하는데, 정신없이 일하는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손님이 주문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서 주문하고 꽤 오래 기다려야 음식이 나왔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구운 오리 고기이다. 덮밥이든 국수든 볶음밥이든, 국물이 있든 없든, 하얗든 빨갛든, 역시 이 식당에서는 구운 오리가 함께 들어 있는 음식을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육즙이 터지는, 겉바속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처음에는 바삭하게 구운 오리를 굳이 국물에 담가 눅눅하게 만드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먹어보니 이게 또 별미였다. 마치 잘 익은 갈비를 냉면과 곁들여 먹는 육쌈냉면 같다고나 할까.

995에서 오리를 먹으며 방콕에서 먹었던 미슐랭 레스토랑의 베이징 덕이 자꾸 오버랩되었다. 가격은 10배 이상 차이나지만 맛은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있다고 하기 어려웠다. 사실 내 정서에는 바다에서 수영하고 덜 마른 수영복 바지 위에 풀어헤친 셔츠만 살짝 걸치고 편안하게 후루룩 소리 내어 먹을 수 있는 995가 더 맞다. 아, 깔끔한 것 좋아하는 피치는 나와 정 반대인 것 같지만.

‘깔끔‘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995 직원들의 투철한 프로의식도 인상적이었다. 유니폼을 맞춰 입고 머리에는 두건을, 손에는 비닐장갑을 착용한 채 일사불란하게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이곳이 왜 줄을 서는 맛집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사실 꼬따오의 음식 위생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다양한 채널을 통해 주의하고 있었던 터라 생각보다 깔끔한 이곳이 더욱더 긍정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맛있는 식당 두 곳 있다고 ‘태국의 전라도’라는 별명을 붙일 수는 없지. 우리가 두 번, 세 번씩 가진 않았지만 좋았던 맛집들도 함께 소개하려 한다.

Pork Leg Thaifood Restrurant는 995 바로 옆에 있다. 여기도 늘 사람이 많아서 주목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숙소를 북부로 옮기고 나서 두 번 포장해서 먹었다. 창문이나 문 따윈 없는 시원한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이곳은 메뉴도 시원시원하게 많아서 선택의 폭이 매우 넓었다. 보통 맛집 하면 한 가지 메뉴에만 사활을 거는 곳이 많은데, 여긴 메인 메뉴에서 간식류까지 별의별 메뉴가 다 있었다. 하나에만 집중하는 그런 곳보다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여기도 음식이 다 맛있었다. 아무 메뉴나 뚝딱 손맛으로 승부하는 우리네 기사식당 할머니 사장님 같다고나 할까.

일단 식당 이름에 쓰인 카무(족발)를 안 먹어볼 수 없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자작한 국물에 담긴 족발과 서비스로 넣어준 삶은 달걀은 이따금씩 고개를 쳐드는 한식 생각을 차곡차곡 접어 저 깊이 묻어버리기에 충분했다.

팟타이는 막 볶은 뜨거운 상태가 아님에도 맛있었고 새콤 달콤 짭짤하게 간이 아주 딱 맞았다. 새우도 넉넉하게 들어 있었다. 문득 포장이라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서 막 내온 카무나 팟타이를 먹었다면 훨씬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Gemini Dumplings & Noodles Restaurant도 방금 전 카무집 근처에 있다. 챗 지피티보다 영 신통치 못한 구글의 재미나이가 떠오르는 이름이라 첫인상은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소개했던 식당 중에서 가장 접근성이 떨어졌다. 구글 평점과 리뷰가 워낙 좋아서 장고 끝에 무더위를 뚫고 다녀왔다. 결론은? 안 먹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여기는 가게 이름처럼 만두를 메인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만두 크기는 물만두보다 크고 비비고보다 작았다. 모양새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 손으로 빚은 것 같았지만 확실치는 않다. 바삭하게 구운 군만두와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찐만두 모두 맛있었다. 특히 찐만두는 고추기름 양념이랑 같이 먹는데, 이 양념이 또 이 가게의 킥이다. 자칫 지루하고 익숙할 수 있는 만두의 맛을 완전히 발전시켰다. 새빨간 첫인상에 매울까 살짝 긴장했지만 한 입 먹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보기와 다르게 인정사정없이 맵지 않고 끝만 살짝 매콤하게 혀를 자극했다. 만두피는 얇지도 두껍지도 않고 딱 좋았다. 적당히 두툼한 만두피가 소스를 머금어서 굳이 만두를 갈라 양념을 묻히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아주 훌륭하게 어우러졌다.


꼬따오, 천상계 차원의 수중 환경을 자랑하여 스노클링과 다이버의 성지라 불리는 곳. 그러나 내게는 그보다 ’음식이 맛있었던 곳’으로 더 크게 다가온다. 특히 한식이나 서양식이 아닌, 태국 전통 음식을 맛있게 즐겨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여긴 정말 다시 갈… 잠깐만. 예닐곱 시간의 야간 버스와 두 시간의 배, 이걸 왕복으로 다시 할 생각을 하니 잠시 끔찍하긴 하다. 하지만 갖가지 맛으로 혀를 행복하게 두들겨 패주었던 쏨땀을 지갑 걱정 없이 시켜 먹을 생각을 하니 지옥 같은 이동도 왠지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결국 내게 여행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는 것은 역시 미각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