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족 태국 여행 이야기
태국 여행 9일 차, 그리고 꼬따오 4일 차. 오늘은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세 밤을 자며 정들었던 블루 다이아몬드 리조트를 떠나 꼬따오 북서부의 두짓 분차 리조트로 간다.
익숙한 리조트 식당에서 익숙한 맛의 아침밥을 먹고, 아무리 바라봐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연한 청록색 바다를 가만히 누워서 바라봤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커다란 개들도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입마개도 목줄도 없이 자유롭게 해변을 거니는 이 덩치들을 처음 봤을 때에는 적잖이 놀랐다. 아이들 앞이라 하나도 안무서운 것처럼 행동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개가 덤벼들 상황을 수십 가지나 설정하고 피하거나 막거나, 최악의 상황에서 내가 대신 물리는 상상을 했더랬다. 이 친구들은 아주 천천히 눈치를 보면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사람 손길이 고픈 걸까, 딱히 음식을 받아먹고 싶어서 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눈이 크고 순하다. 피치도 나도 아쉬운 마음을 담아 정성껏 머리와 턱, 등을 찬찬히 쓰다듬어주었다.
오전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마지막 물놀이는 자연스럽게 건너뛸 수밖에 없었다. 한가로이 숙소에 누워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어제 점심에 포장해서 먹고 감탄을 연발했었던 바로 그 가게, 쏨땀 집이다. 여기 쏨땀을 한 숟가락 퍼서 입 안에 넣는 순간, 시고 달고 짜고 맵고 아삭하고 말랑하고 바삭하고 쫄깃하고… 아주 입 안에서 난리가 난다. 족발무침이나 똠얌, 공심채볶음과 오징어 볶음밥도 맛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여기의 대장은 바로 쏨땀이다. 지난번에 올렸던 글의 주제가 바로 ‘태국의 전라도, 꼬따오‘로, 꼬따오의 먹거리에 대한 글을 썼었다. 바로 이 쏨땀 가게에서의 경험이 그 글의 굵은 뼈대가 되었을 정도로 이 가게는 정말 정말 인상적이었다.
숙소를 옮길 때 작은 사건이 있었다. 다음 숙소인 두짓 분차에서 픽업 차량을 보내주기로 했었는데, 오매불망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다. 리셉션에 전화해 보면 이미 출발했다는 답변만 주고, 오기로 한 차는 오지 않고, 타는 마음을 붙잡고 하염없이 기다리길 삼십 여 분, 드디어 차가 도착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길을 헤맸다고 했다. 이렇게 작은 섬에서 길을 잃는다고? 약간 의아했지만 곧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따오는 메인 도로를 제외하고는 포장되지 않은 길이 많고 워낙 꼬불꼬불 좁게 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저런 곳에 숙소가 있어?’하고 보면 사람 한두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법한 길이 어떻게든 나있곤 했다. 정부의 손길이 이 시골 섬마을 도로포장까지 닿지 않음이 분명해 보였다.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든 생활하기 위해서 손으로 직접 길을 내고 다지고 다듬으며 살았겠구나.
토요타의 픽업트럭 짐칸에 커다란 캐리어 네 개, 배낭 두 개를 욱여넣고 나름 넉넉하게 우리 일행 여섯 명이 앉았다. 거의 섬의 남서부 끝에서 북서부 끝으로 가는 건데 걸린 시간은 겨우 20여 분 남짓. 메인 도로의 번화함과 크고 작은 식당들, 그리고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들을 구경하며 나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두짓 분차의 첫인상은 놀라웠다. 리조트 입구에는 집채만 한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쌓여있고, 그 아래 트럭 천장이 닿을락 말락 한 높이로 곡예하듯 지나갔다. 넓고 깔끔한 로비에서 시원한 웰컴 드링크를 한 잔 하고, 객실로 안내받았다. 방을 처음 보고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게 뭐지 싶어 계속 웃음이 났다. 제법 많은 곳을 가봤지만 이런 방은 또 처음이다.
여기 객실은 바다 바로 옆 깎아지른 듯한 커다란 바위를 그대로 살려 지은 것이 특징이다. 제각각 다르게 생긴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목조 바닥을 세우고 기둥을 올리고 천장을 덮었다. 바위가 그대로 객실의 벽이 되었다. 우리 방은 방의 두 면이 바위였다. 그중에 한 면에는 침대를 바짝 붙여 바위가 그대로 침대 헤드가 되었다. 손으로 쓸어보면 까슬까슬한 바위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어 잠버릇 고약한 사람은 자다가 머리를 부딪치거나 긁혀서 큰일 나겠다 싶었다. 방은 제법 넓었는데 침대 발 쪽으로 미닫이문으로 연결된 욕실도 거의 방만큼 컸다. 평평한 바닥에 벽을 세우고 타일을 붙여 만든 조적식 욕조는 대여섯 명이 들어가도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욕조에서 두세 개의 계단을 오르면, 그러니까 욕실에서 가장 높은 곳에 변기가 있었는데 변기에 앉아 창 밖을 보면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커튼을 쳐서 밖이 안 보이게 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 방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바로 다이닝룸이다. 침실과 연결된 한쪽 면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이 모두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탁 트여 있었다. 정면은 망망대해가, 그리고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돌리면 꼬따오 내의 명물 작은 섬, 꼬낭유안이 내려다보였다. 두 개의 섬 사이에 백사장이 그야말로 그림같이 펼쳐져 있는 꼬낭유안, 어떻게 저런 곳이 있을 수 있을까. 여섯 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큼직한 탁자에 앉아, 작지만 열 일하는 벽걸이 에어컨을 만끽하며, 우리는 시원하고 편안하게 모여 앉아 밥도 먹고 일도 하고, 차 한 잔씩 들며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방구경도 수영후경’. 얼른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흐린 날씨 탓일까, 물놀이를 하는데 제법 추웠다. 이번 태국 여행 중 방콕과 꼬따오를 통틀어 여기 물이 가장 차가웠다. 앞으로 여행이 아직 4일이나 남았기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삼십 분이나 놀았을까, 얼른 방으로 돌아와 커다란 욕조에 아이들을 넣고 따뜻한 물을 틀어주었다. 수영장보다 욕조가 더 좋다며 실컷 노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어른들은 다이닝룸에 앉아 풍경을 안주삼아 싱하 맥주 한 잔을 나누었다.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건 분명 황홀한 경험이었지만 강렬한 자극이 익숙해질 때쯤 전에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드러난 단점은 바로 리조트가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식당가가 있는 사이리비치까지는 리조트에서 빠른 걸음으로 30분은 걸어 나가야만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더위와 오토바이의 위협을 뿌리치며 걷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리조트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워낙 리뷰가 흉흉해서 -이런 리뷰도 있었다. ‘If you have an enemy, recommend this resort to them.’- 기대도 안 했지만 기대보다 더 맛이 없었고, 가격은 비쌌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 법이다. 두 번째 숙소에서는 그야말로 기대 이상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대신 식사의 부족함이 생겼다. 그것도 태국의 전라도, 이 꼬따오에서! 어설픈 불쇼를 건성으로 관람하고 맛없는 생선 플래터를 깨작대며 우리는 남은 3일간의 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괜찮다. 우리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