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없는 땀의 섬, 꼬따오

두 가족 태국 여행 이야기

by 피자치킨피치


기대보다 좋은, 그러나 생각보다 불편한 두짓 분차 리조트의 둘째 날이 밝았다.


기대보다 훌륭한 조식 뷔페에서 양껏 배를 채우고, 눈으로는 꼬낭유안의 멋진 풍경을 담았다. 리조트에서 꼬낭유안을 오가는 보트를 운영한다는 입간판을 리조트 내 여기저기에서 보았는데 기회를 잡아 이용해 보기로 했다.


두짓 분차가 생각보다 불편했던 이유는 바로 애매한 위치 때문이다. 주변에 식당이 없다. 리조트 식당을 이용하자니 비싸기만 하고 정말 정말 맛이 없었다.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줄 서는 맛집들이 즐비한 ‘태국의 전라도‘ 꼬따오에서 맛없는 리조트 식당을 갈 수는 없는 법.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리조트에서 꼬따오 최고의 번화가이자 맛집이 모여 있는 사이리비치와 항구를 오가는 무료 셔틀 차량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비록 꼬롬하게 식사하기 애매한 시간으로만 셔틀을 운영했지만, 우리는 음식을 포장해 오는 전략으로 대응했다.


사이리비치는 활기찼다. 사람들로 붐비는 상점가를 간단하게 둘러보고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렸다. 한참을 고민하다 ‘SINGHA’ 맥주 로고가 박힌 모자를 골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태국 맥주는 모두 동물 이름이라고 한다. Leo는 표범을, Chang은 코끼리를, 그리고 SINGHA는 사자를 뜻한다. 우리로 치면 머리에 ‘OB 맥주‘ 로고를 써붙이고 다니는 셈이다. 잠깐, 그렇다면 나쁘지 않은데? 베어스 야구 구단이 있었어서 그런가. 어쨌든 뭉미는 ‘우리나라에서 이걸 쓸 일이 있겠어?‘하며 반대했고, 나는 무조건 쓸 수 있다고 반박했다. 큰소리쳤지만 결국 뭉미의 말이 옳았다. 아직까지 이 모자가 모자걸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면. 그렇지만 장식품이면 또 어떤가.


점심은 995덕에서 겉바속촉 오리구이가 듬뿍 올라간 국수와 덮밥을 먹었다. 구체적인 맛에 대한 소감은 ‘태국의 전라도, 꼬따오‘편에 남겼으니 여기에는 ‘진짜 너무너무 맛있었다.‘ 정도로만 남기겠다. 아무튼 리조트 식당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식사를 뒤로 하고 시원한 음료를 먹으러 카페를 찾았다. 사실 음료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절실히 필요했다. 얼마나 날이 더운지 위에 하나, 아래 하나, 달랑 두 장 걸친 옷은 땀으로 폭싹 젖어 꾹 눌러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재밌는 건 옷이 조금만 젖으면 되게 신경 쓰이는데 아예 주체하지 못할 만큼 폭싹 젖으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사지 가게가 그랬다. 소파는 내가 앉기 전부터 이미 누군가의 땀으로 젖어 있었는데 어차피 나도 젖어 있으니 젖은 소파가 그렇게 더러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소파를 땀으로 적신게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더라. 너도 나도 땀을 흘려 땀이 부끄럽거나 민망하거나, 혹은 더러운 것이 아니게 되는 곳, 그야말로 꼬따오는 부담 없는 땀의 섬인 것이다.


어른들은 취향껏 등이며 어깨, 발 마사지를 받고, 아이들은 각자 색깔을 골라 색실로 머리를 땋았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휴식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셔틀을 기다리다 건물을 뚫고 비현실적으로 높게 자란 나무를 한참 바라보았다. 20층 높이는 돼 보인다는 내 말에 다들 그 정돈 아니고 10층 정도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여긴 높아봐야 3층 건물이니 조금만 키가 큰 나무를 보면 그 웅장함이 배는 되어 보였다. 그래, 뭐든 상대적인 것이지.


포장한 음식을 들고 꼬낭유안과 탁 트인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우리 방 다이닝룸에 모였다. 벌써 일몰 시간이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파노라마 창 밖,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기다란 가로 선 위로 해가 떨어진다. 새삼, 태양은 매일 뜨고 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차 없이 부지런한 태양의 운동, 아니 실제로는 지구의 운동 덕분에 우리는 하루에 두 번, 자연이 선물한 멋진 풍경을 누구나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상을 살다 보면 이 장관을 온몸으로 만끽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각자의 상황에서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뜨는 해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고 지는 해는 구경도 못하고 지나가곤 한다. 이렇게 특별한 장소와 상황을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조물주가 보여주는 찬란한 빛의 향연을 향유할 수 있다.


조촐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일찌감치 판을 접었다. 두 가족이 각자의 방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우리 세 식구는 돌아가며 말끔히 씻고 커다란 침대에 함께 누웠다. 딸이 챙겨 온 삼국지를 나누어 읽고 오늘 있었던 일을 두런두런 나누며 하릴없이 뒹굴었다.


자기 전, 편안하고 조용해야 할 이때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바로 어젯밤 넘어져 다친 피치의 양쪽 무릎을 소독하는 일이다. 쓰라린 고통을 이미 경험해 본 피치는 소독을 시도하자 엄청난 몸부림과 비명으로 대응했고, 그런 모습이 마냥 귀여운 엄마 아빠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노련한 뭉미의 처치로 소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여행지를 만끽하며 샘솟는 아드레날린에 취하는 날이 아닌, 조금은 소소한 하루였다. 결코 쓰지도 않을 것 같은 태국 맥주 로고가 적힌 모자를 고르고, 태어나서 이렇게 흘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땀도 흘려보고, 매일 뜨고 지는 해에 커다란 감동을 느끼고, 딸의 무릎에 난 상처를 소독하며 쫓고 쫓기며 마냥 행복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