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족 태국 여행 이야기
태국 여행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게 된다. 그러므로 온전한 24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시계에서 손목을 툭툭 치는 기상 알림 진동을 애써 무시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문득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번쩍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꼬따오로 넘어와서는 한 번도 달린 적이 없다. 피곤해도 오늘은 좀 뛰어야겠다. 마지막이니까.
고양이 세수를 하고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해는 이미 떴는지 사위는 밝아졌는데 리조트 밖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에는 차나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선선한 아침 바람을 느끼며 낙타등 같은 작은 언덕을 몇 개나 넘었을까, 드디어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셔틀을 타고 시내로 나올 때 몇 번이나 봤던 이 길이 왠지 낯설었다. 도로를 빠져나와 백사장으로 몸을 꺾었다. 발이 푹푹 빠져서 신발을 버릴까 염려했는데 웬걸, 바닷물 바로 옆을 디뎌도 땅이 아주 단단했다.
지난 일 년 간 달리기에 푹 빠져 여기저기를 열심히 뛰었지만 백사장을 뛰는 건 또 처음이다. 어제 하루 종일 태양이 뜨겁게 달궜던 아스팔트는 해가 넘어가고 다시 뜰 때까지도 충분히 식지 않았는데, 백사장은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시원하고 상쾌했다. 두 다리는 나도 모르게 더 경쾌하게 땅을 박찼고 팔꿈치는 신이 나서 쭉쭉 뒤로 뻗었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지만 숨이 차진 않았다. 이대로라면 밤까지 계속 뛰어도 될 만큼. 아, 어제도 뛸 걸 그랬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상쾌했던 생애 첫 백사장 달리기를 마치고 프런트에 들러 오늘은 꼬낭유안 보트를 이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나는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에서야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었다. 진작 더 자세히 물어볼걸. 두짓 분차 리조트에 온 첫날, 프런트에 ‘꼬낭유안 왕복 보트 서비스’에 대해 물어봤을 때 ‘높은 파도로 보트 서비스가 break 됐다’는 답을 들었었다. 나는 이 ‘break‘의 뜻이 프로그램 운영에 ‘차질‘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지, 진짜 보트의 물리적 ‘파손‘을 의미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다. 말 그대로 높은 파도 때문에 정박해 있던 보트가 바위에 부딪쳐 부서졌고, 수리가 다 될 때까지 보트 셔틀을 운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매불망 리조트 보트를 기다리고 있었던 우리는 부랴부랴 시내에 나가 다른 배를 알아보았다. 꼬낭유안 가는 배편은 제법 많았지만 가격이 비쌌고, 리조트에서 바로 탑승하지 않고 사이리비치까지 나와서 타야 했으며 돌아올 때에도 사이리비치에서 다시 숙소로 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긴급회의 끝에 우리는 꼬낭유안 투어를 포기하고, 대신 숙소 수영장과 숙소 앞바다 스노클링을 즐기기로 했다. 꼬낭유안은 멀리서 눈으로만 담는 걸로.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까 무리하지 않기로 말이다.
스노클링 장비를 준비하고 리조트 전용 해변으로 향했다. 직접 가본 내 감상은 ’여기가 전용 해변이라고?’였다. 과연 해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을까. 집채만 한 바위들 사이사이에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지어놓은 우리 리조트는 애초에 백사장이라고는 도저히 찾기 어려웠는데, 그래도 사람 하나 간신히 누울 수 있을 것 같은 백사장을 어찌어찌 조성해서 그곳을 전용 해변이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물에 잠긴 바위에는 각종 어패류들이 날카롭게 진을 치고 있었고, 좁은 해변을 삼면으로 바위가 마치 철옹성처럼 막고 있었다. 철썩철썩 은은한 파도에도 몸이 휘청휘청거렸고 자칫 어패류에 몸이 쓸리기라도 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안전상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스노클링 시늉만 좀 하고 바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물고기는 참 많더라.
다시 사이리비치로 나왔다. 이럴 거면 사이리비치에 방을 구할걸 그랬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사이리비치에 있는 ‘사이리 헛‘ 리조트가 좋아 보였다. 친구네가 10여 년 전에 묵었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때와 다르게 리모델링도 착실히 되어 있고 리조트 규모도 제법 건실해 보였다. 무엇보다 위치가 환상적인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주변에 식당과 상점가가 아주 잘 조성되어 있어 ‘태국의 전라도’ 꼬따오의 먹거리를 하나하나 정복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다음에 꼬따오에 다시 온다면 숙소는 무조건 사이리헛 리조트로 하리라.
사이리헛 리조트 식당 그늘에 앉아 코코넛 워터를 양껏 마셨다. 십 년 전쯤인가 라오스 여행을 하다가 갈증에 지쳐 오래된 코코넛 워터를 상한 줄도 모르고 맛있다고 마시고는, 배탈이 나서 며칠을 앓은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오랫동안 코코넛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번 태국 여행에서 다시금 코코넛 워터의 맛에 푹 빠졌다. 코코넛 워터의 매력은 적당함에 있다. 그렇게 달지도 청량하지도 않다. 적당한 점도에 적당한 당도, 적당히 시원한 것이 매력적이다. 처음 먹을 땐 결코 알 수 없는, 마치 음료의 평양냉면 같은 그런 맛이랄까.
아이들은 매일 보는 바다가 질리지 않나 보다. 처음에는 나무 그늘 안에서 모래놀이만 한다더니 어느새 바다로 나가 파도를 뛰어넘으며 깔깔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렇다 할 준비 과정도 없이 금세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다. 아이들끼리 바다에 둘 수 있나. 어른들도 못 이기는 척 바다에 들어갔다. 갈아입을 옷이 없기에 그냥 웃옷을 훌렁 벗어버리고 물에 뛰어들었다. 이럴 것 같아서 애초에 바지는 수영복을 입고 나왔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그리고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멀어질수록 마음가짐도, 복장도 가벼워진다. 물에 들어갈 땐 당연히 셔츠를 벗어던진다. 배가 좀 나오면 어떻고 탄탄한 몸매가 아니면 또 어떤가. 알아볼 사람도 없고 뭐라 할 사람도 없다. 오히려 꼬따오 해변은 옷을 입고 바다에 들어가는 게 어색한 곳이다. 뒤처리도 얼마나 간단한가. 짠물에 젖어 축축한 웃옷을 계속 입고 있지 않아도 되고, 수건으로 몸의 물기만 툭툭 찍어 말리고 벗어뒀던 웃옷만 다시 걸치면 깔끔하게 뒤처리가 끝난다.
숙소로 돌아와 아쉬운 대로 마지막 저녁 수영을 야무지게 즐겼다. 저녁 식사로는 포장해 온 만두와 족발, 진작부터 사두었던 컵라면을 먹었다. 돌아갈 짐 무게를 줄이기 위해 김치랑 밑반찬 등 아껴두었던 먹거리를 싹 다 털었다. 아까 저녁거리를 살 때 ‘부족하면 숙소에서 더 주문하자’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래저래 쟁여두었던 먹거리가 너무 많아서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겼다. 해가 넘어간다. 하루가 참 빠르다.
태국에서 11일,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마지막이니까 ‘ 아침부터 달렸는데, 밤에는 ‘마지막이니까‘ 편안하게 쉬고 싶었다. 아이들은 깨끗이 씻고 침대에서 영화 파티를, 어른들은 다이닝룸에서 가벼운 맥주 파티를 열었다.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사실 내일 돌아가는 길은 꽤 험난하다. 꼬따오에서 배를 타고 수랏타니로, 다시 국내선 비행기로 방콕으로, 그리고 다시 인천으로, 하루를 꼬박 이동에만 쏟아야 한다. 그래도 돌아보니 후회하진 않는다. 다시 꼬따오에 올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면 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물론 내일 하루 종일 고생한 뒤에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