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두 가족 태국 여행 이야기

by 피자치킨피치


열두 번째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꼬따오에서 수랏타니로, 수랏타니에서 방콕 수완나품 공항으로, 거기에서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는 코스이다. 배, 버스, 비행기로 탈 것을 바꿔가며 하루 종일 이동에만 시간을 쏟는다. 새삼 남들 잘 안 오는 이곳까지 구석구석 참 깊이도 들어왔다 싶다. 실제로 꼬따오에서는 한국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깊고 깊은 이곳까지 애써 들어온 보람이 있었는가 물어본다면 당연히 답은 예스이다. 이곳에서의 일주일은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할만할 만큼 황홀했다. 자연환경도, 볼거리도, 그리고 맛있는 음식과 저렴한 물가까지.


일찌감치 일어나 마지막 아침 식사를 했다. 벌써 3일째 같은 식사인데도 물리지 않고 아주 맛있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따뜻한 라테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는 친구네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결국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한 섬, 꼬낭유안을 배경으로 의젓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이별을 맞이하는 딸과 친구의 모습이 대견하다. 호텔 셔틀을 타고 항구로 갔다. 예약해 둔 표를 발권하고 기다리길 잠시, 타고 갈 배를 보는데 어라? 배가 생각보다 작았다. 꼬따오로 들어올 때는 크고 좌석도 편안한 배였는데 나가는 배는 크기도 작고 좌석도 불편해 보였다. 꼬따오로 주로 오가는 춤폰 항구가 아니고 수랏타니 항구로 가기 때문인 듯하다. 가격은 똑같으면서 이래도 되는 건가.


배는 빨랐다. 그만큼 쿵쿵 쾅쾅하며 파도를 가르는 충격이 상당히 강력했다. 이러다 배가 부서지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앞뒤양옆 사람들을 쳐다봤는데 그 사람들도 나와 눈을 마주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화는 안 나누어봤지만 동그랗게 뜬 큰 눈을 통해 대충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배가 덜컹이는 게 일반적인 건지 아니면 특별한 건지 너무 궁금하고, 또 그래서 불안했다. 승무원들의 행동과 말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놀랍게도 승무원도 봉지를 들고 구토를 하더라. 아, 이게 일반적인 덜컹거림은 아니구나. 불안했다. 배가 부서지거나 침몰할 경우를 대비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더욱 단단히 여몄다. 그래도 바닷물이 차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사고가 나도 인근해라 구조는 금방 올 것 같다, 피치가 생존수영을 배워두어서 참 다행이다 등의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배가 파도에 붕붕 날았다 바닥에 쾅 떨어지는 충격도, 그때마다 튀는 물보라도, 사람들의 짤막한 비명소리도, 결국은 수면욕을 이기지는 못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난다.


배는 출항 세 시간 만에 수랏타니 항구에 도착했다. 말이 항구지 현대적인 정박 시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육지에 오르며 이거 좀 위험하구나 싶었지만 일단 육지에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 감사했다. 짐을 챙기고 밴으로 갈아타 수랏타니 공항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기 때문에 우리 셋 모두 배가 많이 고팠다. 아쉽게도 여기는 국내선 위주의 공항이라 변변한 식당이나 라운지 등 쉴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없이 프레첼을 파는 한 체인점에 앉았다. 프레첼을 한 입 무는데, 꼬따오에서 먹었던 쏨땀, 족발, 국수, 덮밥이 아른거렸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승선의 공포에서 해방된 지 얼마나 됐다고 맛 타령인가.


우리가 탈 비행기는 비엣젯이다. 좁은 건 둘째 치고, 잦은 연착과 불친절, 여유 없이 칼 같은 수하물 무게 체크와 추가 요금 부과 등으로 악명 높은 바로 그 항공사이다. 아니나 다를까 게이트 앞에서 탑승을 기다리는데 어김없이 연착을 안내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어쩐지 게이트 앞에 비엣젯 비행기가 보이지 않더라니. 사실 연착을 예상해서 비행기 시간을 여유 있게 잡아두었던 우리는 그나마 마음 편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원래 18시였다. 이미 출발 시간을 지나 18시 10분쯤 저 멀리 활주로에서 비행기 한 대가 착륙하는 것이 보였다. 하필 비엣젯 항공기이길래 설마 저 비행기를 타는 건 아니겠지 했다. 하지만 그 설마가 맞았다. 손님들이 다 내리고, 짐을 빼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탑승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활주로 버스를 타고 아까 내렸던 그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 스케줄을 이렇게 운영한다고? 놀라기도 잠시, 생각보다 비행기 내부는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재빠르게 활주로에 올랐다. 잦은 연착 덕분에 오히려 이런 대응은 재빠른가 보다.


19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두 시간 뒤 21시에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배-버스-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는데, 아직 가장 먼 거리의 이동이 남았다. 라운지에 들러 주린 배를 허겁지겁 채웠다. 이젠 먹고 싶어도 쉽게 먹기 힘든 카오카무와 똠얌꿍을 한 번씩 더 담았다. 먹어도 먹어도 정말 질리지 않는 맛이다.


이동의 마지막, 제주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피치는 이미 졸음을 이기지 못해 반은 정신을 놓은 상태고, 그런 피치를 둘러업고 이동한 나도 아내도, 얼른 눈을 붙이고 싶었다. 쏼라쏼라 알아듣기 힘든 태국어와 영어 대신 편안한 한국어가 들린다. 푹 자고 싶었지만 그러긴 어려웠다. 좁은 좌석에서 나와 아내 사이에 피치까지 눕히니 너무 불편해서 그야말로 허리가 부서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요 녀석, 엄마 아빠의 이 희생을 너는 아느냐! 그래도 비행기 착륙과 함께 하품을 쩍 하며 ’아, 잘 잤다!’를 외치는 피치를 보니 허리 통증은 잊을만하더라. 모두의 꿀잠과 허리 건강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돈을 많이 벌어야 하겠다. 비즈니스 좌석 끊고 여행 다니려면.


‘꼬따오는 태국의 전라도네’, ‘한식 생각이 전혀 나질 않네’ 하던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천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지독한 한식 허기를 느꼈다. 생선구이와 솥밥, 김치찌개를 기가 막히게 끓여내는 영종도의 단골 식당을 찾았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이 맛! 지금 글 열세 편째 계속해서 태국 음식 예찬을 펼쳤지만, 역시나 음식의 왕은 한식이 아닐까 싶다.


방콕에서 우리 가족끼리 일주일, 다시 꼬따오에서 친구네 가족과 일주일, 돌아보면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나와 다른 문화 속에 풍덩 빠져보는 경험 때문일 것이다. 접하기 쉽지 않았던 음식, 옷, 화폐, 가옥, 언어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나면 그 나라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이번에는 다른 나라 사람뿐 아니라 친구네 가족과 여행을 함께 하며 그들의 가족 문화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무얼 먹을지, 무엇을 할지, 심지어 어느 숙소에 묵을지도 여행지에 와서 결정하는 그들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함께 자고 먹고 놀며 그 나름의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었다. 불확실성 속에서 오히려 단단해지는 가족애, 그러니까 고난과 역경을 만났을 때 함께 똘똘 뭉쳐 해결하는 전우애가 가족 간에 싹트게 된다는 친구의 말에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여행에서 한 번 시도해 볼까? 아마 어렵겠지, 다시 태어난다면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