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발리 여행기
우붓의 교통체증은 대단했다. 편도 1차로의 작은 도로는 정오가 되자 양방향 모두 꽉꽉 막혀서, 과장을 살짝만 보태자면 걷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야라마 코티지 근처 코코마트에서 맥주와 간식을 잔뜩 사들고 그랩을 불러 북쪽으로 깊은 정글을 향해 차를 달렸다. 우붓 시내를 벗어나자 거짓말처럼 길이 뻥뻥 뚫렸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곡예하듯 좁은 길을 날아가는 차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가파른 코너길이 나오거나 교차로 앞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선제 클락션을 빵빵-하고 울렸다. 이게 이 기사님만 그러는 게 아니라 너도나도 그러는 걸 보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발리의 운전 매너인 듯 보였다. 오른손 손가락이 얼얼하고 땀이 흥건하게 밴 것이, 나도 모르게 조수석 손잡이를 세게 붙잡고 있었나 보다.
공포와 긴장의 30분이 지나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의 두 번째 숙소는 악사리 리조트로 5성급이지만 1박에 16만 원인, 가격이 대체로 합리적인 곳이었다. 계단식 논과 무성한 정글뷰, 그리고 2단 인피니티 풀과 자쿠지가 인상적인 곳. 어젯밤 야라마 코티지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씻기조차 거부하던 피치는 악사리 리조트 방에 들어가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결혼 10주년을 축하한다는 문구를 나뭇잎과 꽃으로 장식한 침대를 마주하고는 우리 모두 흥분이 절정에 달했다. 과일 바구니에 담긴 과일을 몇 개 까먹으며 창 밖 울창한 정글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 물이 차갑다는 평이 있어서 걱정했지만 우려보다는 괜찮았다. 너무 오랜 시간 수영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면 따뜻한 자쿠지에서 몸을 푸니 거의 무한대로 놀 수 있더라. 계단식 논처럼 수영장도 1층과 2층으로 나뉘었다. 1층은 깊었고, 2층은 얕았다. 내겐 너무 얕아서 수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깊이지만 피치의 수영 실력을 뽐내기엔 2층이 제격이었다. 나는 별로 재미없었지만 피치가 좋아하니 함께 있을 수밖에. 물이 허벅지에서 찰랑거리는 2층에서 조약돌과 나뭇잎, 꽃잎을 재료 삼아 수중 소꿉놀이를 하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래, 이렇게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그리 많이 남진 않았다. 곧 피치도 엄마 아빠보다는 친구들을 더 좋아하겠지. 이따금씩 피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루하거나 무료해질 때면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들고 현재에 더 집중하게 되곤 한다.
푸릇푸릇한 정글 속 수영장이 주는 이국적인 정취를 마음껏 즐겼다. 하루 종일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방에 돌아와 뜨끈한 물로 창 밖을 바라보며 목욕까지. 아, 가만히 창 밖을 보다 보면 창 밖 정글에서 자유롭게 노는 원숭이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였다면 큰맘 먹고 주문했을 룸서비스도 여기에선 큰 맘 말고 중간 맘만 먹으면 주문할 수 있었다. 방으로 괜찮은 가격의 치킨 커리를 주문하고, 라면에 햇반, 참치로 부족한 1%를 채운 저녁 식사도 아기자기하니 재밌었다. 접이식 전기포트는 정말 한국인이라면 여행에 챙겨야 할 1순위가 분명하다.
이튿날 아침, 아침잠 없는 나는 GYM에서 운동 한 판을 즐기고, 이어서 뭉미 피치와 함께 아침 요가 수업을 들었다. 마침 예약한 사람이 우리 가족뿐이라 조촐하지만 내실 있게 요가를 즐길 수 있었다. 마른 몸에 잔근육이 슬쩍슬쩍 엿보이는 남자 강사님은 매우 유쾌했고 칭찬에 능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따라 하던 피치도 강사님의 극찬에 힘입어 점점 자신감을 찾아갔다. 전반적으로 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강사님의 리뷰 잘 부탁한다는 압박이 분위기를 살짝 망쳤다. 문득 발리 사람들은 구글 리뷰로 먹고 산다는 말이 떠올랐다. 리뷰가 지나치게 좋은 곳은 반드시 리뷰 이벤트나 은근한 압박이 있는 곳이었다. 4.9, 5.0 등 평점이 지나치게 높은 곳보다 4.2, 4.3 정도의 식당이 오히려 괜찮을 수 있다는 분석 글도 공감이 된다. 구글 지도도 우리나라 카카오맵의 매콤한 평점 맛 좀 봐야 할 텐데. 어쨌든 강사님의 혼을 담은 사진과 영상은 퍽 고마웠다.
악사리 리조트에는 수영장 물에 식사를 띄우는 플로팅 조식 서비스가 있었다. 부담스러운 가격도 아니고 한 번쯤 해볼 만한 이벤트구나 해서 신청을 고민하긴 했었다. 내일 아침에 신청할까 말까 고민하던 때, 마침 다른 사람들이 1층 수영장에서 플로팅 조식 서비스를 받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먹는 건 둘째치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더라. 오히려 먹을 때에는 출렁거리는 물살에 제대로 먹기 힘들어 보였다. 아, 우리는 신청하지 않길 잘했구나. 이름 모를 동양인(일본인으로 추정) 두 분께. 덕분에 우리도 대리만족 했어요. 고맙습니다.
우붓의 자연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다. 다람쥐, 이름 모를 새, 도마뱀, 주먹만 한 달팽이를 관찰하며 새삼 대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었다. 커다란 창밖으로 무성한 정글 삼림을 느끼며 큼직한 욕조에서 물장난 치며 한 목욕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