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발리 여행기
우붓 시내를 벗어나 북부로 30여 분 떨어져 있는 악사리 리조트. 꽤나 무성한 정글 지역에 위치해 있고, 편도 1차로의 좁은 도로가 좌우는 물론이고 위아래로도 굽이치는 곳이다.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기에도 마땅치 않아서 리조트 내 식당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택시를 불러 근처 식당을 찾아가야만 했다. 걸어서 이동을? 음, 그건 조금 위험해 보였다. 모험심 가득한 서양인들은 잘만 걸어 다니는 것 같았지만.
처음에는 편안한 휴식에 달콤하게 절여져 리조트 내 식당만을 이용할까 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둘째 날 저녁이 되자 우리들의 뇌는 새로운 자극을 강렬하게 원했다. 짧은 상의 끝에 아늑하지만 지루한 리조트를 떠나 근처 식당을 찾아 작은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자들이 찾지 않는 진짜 현지인 식당으로 가자! 그렇게 찾아간 우붓 북부의 로컬 식당은 바로 D’uma sari(어떻게 읽는지 몰라서 그대로 씀)이다.
그랩을 불러 약 10분, 리조트에서 식당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로컬 식당답게 사장님은 외국인(우리)의 방문에 반가움과 어색함을 동시에 느끼는 듯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어쩌면 마감 시간이 다 되어 나타난 손님이 달갑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메뉴판엔 사진이 없었고, 글씨는 분명 영어지만 당최 들어본 적 없는 음식 이름을 한참 해석해 가며 어찌어찌 식사 주문을 마쳤다. 주방에 조리사가 한 명뿐이어서일까,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밖에 없는 식당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여긴 왜 사람이 없을까, 저녁 시간을 한참 넘겨 방문했기 때문일까? 식당에 막 도착했을 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는데, 주문을 마치자 어느새 해가 완전히 넘어갔다. 주변은 불 한 점 없이 깜깜하고, 문도, 벽도 없이 기둥만으로 천장을 버티고 있는, 탁 트인 구조의 식당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자유를 찾아 우리를 탈출한 잎싹이 족제비를 만났을 때의 마음이 이랬을까. 평온했던 리조트 밖 현지인의 삶 속에 무턱대고 괜히 들어온 것은 아닌지. 살짝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에는 보통 개가 많다. 특히 송아지만큼 커다란 개들이 목줄도 없이 어슬렁거리며 좁은 도로를 활보하는데, 길을 걷다 이 녀석들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 기세에 살짝 위축되어 눈을 피하곤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개가 아닌 고양이가 두 마리나 있었다. 발리 곳곳에서 눈을 씻고 찾아도 잘 보이지 않던 고양이가 여기에는 두 마리나 있다? 그 점도 이상했다. ‘여기는 뭔가 느낌이 이상해.’ 아빠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평소 고양이라면 자다가도 눈을 뜨는 피치는 식사는 뒷전이고 행복한 표정으로 고양이를 꾀어내기에 바빴다.
다 지나서야 하는 말인데 사실 그때 두려움을 걷어낸 시선으로 식당을 마주했다면, 공포 대신 평화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벽이 없어 가릴 것 없이 사방으로 펼쳐지는 차분한 논 풍경과, 한 켠에 조성해 놓은 연못, 그 위로 핀 예쁜 수련, 옆쪽 아기자기한 원두막과 예쁘게 써서 장식한 식당 이름. 해가 떨어지며 붉게 빛나던 하늘까지…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여기 사진을 보고 조금 놀랐다. 같은 풍경을 봤지만 그때는 전혀 다르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막연한 두려움은 음식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미고랭(볶음면)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음식답게 어느 식당을 가도 맛있었다. 여기 미고랭 역시 두 말할 것 없이 맛있었고 저렴한 가격 대비 양도 무척 많았다. 다음으로 나온 바나나 튀김은 난생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부드러운 바나나를 다소 투박하고 딱딱한 튀김옷이 감싸고 있는, 뭔가 잘못 튀긴 치킨 너겟 같은 모양이었다. 겉모습만 보고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한 입을 베어 물자 자연스레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우와, 바나나는 뜨거울 때 더 달콤해지는구나! 바삭한 튀김옷에 숨어 있던 바나나는 마치 데운 연유처럼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리고 두툼한 튀김옷 덕분에 오래도록 속이 잘 식지 않았다. 투박한 튀김옷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생선구이 요리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바삭하게 구워진 생선을 기대했는데, 나타난 요리는 구이와 조림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우리나라 조리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요리였다. 먼저 듬성듬성 칼집을 낸 큼직한 생선(틸라피아로 추정)을 기름에 바싹 튀겨내고, 그 위에 따로 조리한 소스를 부어서 완성했다. 손님에게 부먹, 찍먹의 선택권을 좀 주면 어땠을까 싶다. 겉바속촉 고등어구이를 제일 좋아하는 피치는 바삭하게 잘 구운 생선이 아닌, 향신료 가득한 소스에 절여진 생선을 보자 금방 풀이 죽고 말았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요게 내 입맛엔 아주 잘 맞았다. 이건 분명히 먹어본 적이 있다. 뭘까… 그래!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신 시래기 생선조림의 맛이다. 짭짤한 간장 베이스에 매콤하고, 시고, 달고, 온갖 맛이 한 번에 느껴지는 폭발적인 감칠맛! 정말이지 아직도 발리의 음식 하면 이곳의 생선구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자 낯설고 두려웠던 첫인상은 어느새 만족으로 바뀌었다. 하얀 벽을 가득 채운 도마뱀들도 귀엽게 느껴졌고 논가에서 풍기던 은은한 물 비린내는 정겨운 흙내음으로 다가왔다. 식사를 마치고 그랩을 기다리며 식당에서 파는 과자를 두 개 집어 들고 계산을 시도했다. 그런데 사장님은 우리가 가진 지폐가 너무 고액권이라 거스름돈이 없다며 과자를 그냥 서비스로 챙겨주셨다. 다소 어색하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친절함으로 무장한 사장님의 태도가 감동으로 남는다.
고양이를 쫓아다니던 아이의 웃음과, 생경한 풍경이 가져다주는 긴장, 하지만 정말 맛있었던 음식. 그날의 저녁은 조금 무서웠지만,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여행은 이렇게 익숙함 밖으로 한 걸음 나갈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