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다 Jul 18. 2024

쓸모없는 그러나 의미 있는

때론 하고픈 일에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취미가 생겼다. 

아이들 장난감이라도 만들어줘 볼까 해서 시작했던 목공에 제법 재미를 붙여서 두어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딱히 당장에 쓸모가 있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다. 

자주는 아닐지라도 일 년에 몇 번씩 공방에 드나들기도 하고 수업도 제법 들었다.


-위이가 이 잉~~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톱날을 보면 두려움에 등줄기가 쭈뼛하다가도 시원하게 잘려나가는 나무를 보면 짜릿했다. 

두드리고 깎고 자르고 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즐거웠다. 


"근데 그거 얻다 쓸건대?"

내가 자격증을 따서 좋아할 때마다 남편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그냥 "언젠간 쓸모가 있을지 또 알아?"라며 웃으며 넘기곤 했다.




집안일이니 회사일이니 치이고 치이는 동안 1년여를 나무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지내다가 함께 자격증준비를 했던 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동생은 최근 다녔던 목공 학원을 추천했고 그 말에 다시 맘이 살랑거리는 것을 느꼈다.


"토요일 뿐이야. 딱 11번. " 

남편은 마지못해 그러라고 했고 대신 토요일마다 두 아이가 다니던 1시간짜리 체육교실을 당분간 중단하자 했다. 세 아이를 데리고 체육관까지 오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난 동의했고 남편이 탐탁지 않아 하는 걸 알면서도 학원을 다니고 싶은 욕심에 모른 채 했다. 


그때부터였다.


토요일 아침마다 학원을 가려 나설 때마다 남편은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애들 데리고 나가면 좋을 텐데."

"오늘은 공기가 좋아서 애들이 나가면 좋아할 텐데. "

"오늘은.... " 또 "오늘은..."


남편에겐 장난이었겠지만 나에겐 빈정거림과 같은 말투로 매번 나가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해도 모른 채하며 다니기를 대여섯 번. 

그리고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엄마. 나 내일 킥보드 타러 가고 싶어. "

아이의 말에 남편이 대답했다.

"안돼~ 내일 엄마는~~ 또 너네 두고 학원 갈 거야~~"


"야!!!"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화였다. 

한번 터져버린 내 화는 속사포처럼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매번 엄마 때문에 뭘 못하네~ 엄마가 너네를 두고 학원을 가네! 매번 참았어.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애들 토요일 학원 가는 거 끊은 것도 결국 네가 귀찮아서잖아!! 나는 애 셋 데리고 너 없을 때마다 낑낑대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다녔어! 내가 너보다 힘이 달리면 딸렸지!! 그래도 난 다 했어! 근데 너는 너 토요일에 좀 더 자고 좀 더 쉬고 싶으니까 애들 학원 안 보내는 거잖아! 그걸 왜 내 핑계를 대?  하지 말라고~!!! 쫌!!!!! "


남편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다시 맞받아쳤다.


"그러니까! 그 학원이 애들 주말보다 중요하냐고! 그거 배워서 어디다 쓸 거냐고!!"


매번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오던 질문이었다. 나는 항상 맘속에만 답하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냥! 그냥!! 그냥!!! 사람이!! 애엄마도!! 그냥 하고 싶은 것도 있잖아!!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잖아!! 너 저녁마다 한잔씩 마시는 술은? 맨날 피곤하다면서 잠 안 자고 하는 게임은? 그런 건 다 어따쓰는데?? 너도!!!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  "


남편은 잠시 가만있더니 "알았어. 미안해. 안 그럴게. " 


이렇게 아주 잠시잠깐의 부부싸움이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언젠가부터 무슨 일을 할 때면 항상 실용성을 생각하곤 했다.


그건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더 확연해졌다.


시간적으로 재정적으로 늘 부족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따금씩 누리는 여유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치는 마치 이기적인 나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엄마는 늘 희생해야 해. 엄마는 늘 아이만을 위해 살아야 돼.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누리는 모든 순간에 반드시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쓸모가 없더라도 그 순간에 그 시간에 혹은 그날에 그 모든 것들이 즐겁고 행복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되기도 한다.


어떤 날 지치고 힘들 때 이따금씩 꺼내어보며 웃으며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사소한 사치들을 이제는 조금씩 욕심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아집을 위한 신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