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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다 Jul 28. 2023

장애는 선택이 아님을.

자폐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 

자 폐.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일상과 거리가 멀고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느껴졌던 그 단어가 내 일상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허둥거리기만 했다. 


자폐스펙트럼증후군은 정확한 원인조차 알 수 없고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이유 또한 그 범위가 넓어 일반 질병이나 장애처럼 그 증상을 명확히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불치 라고 했다. 

선척적인 문제일 수도 후천적인 문제일 수도 있으며 대부분 지적장애를 동반하고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다. 

그 어떤 누구도 그 어떤 의사도 원인과 치료법을 정확히 제시할 수 없어 더 막막하기만 했다. 


내게는 세명의 아이가 있고 그중 첫째가 중증 자폐를 가지고 있다. 


두 돌 이 넘어가도록 말한마디 하지 못하던 아이가 걱정되어 받은 검사에서 경계성 지적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27개월 무렵이었다.


경계성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단어인지.  그때에 그 단어는 마치 '지금이라도 열심히 치료하면 나을 수 있어요 '라는 듯이 들렸고 생전 처음 듣는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 인지치료 등등의 생소한 치료들을 알아보면서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을 했지만 그래도 금방 나아질 거라 믿으며 잠시만 하는 거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처음시작한 치료는 놀이치료와 감각통합치료였다. 


하지만 감각통합치료는 오래지 않아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고 놀이치료를 2년여간 지속했다. 

이때 좀 더 적극적이었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어리석게도 나 스스로 내 아이의 장애에 대한 부정이 컸던 시기였다. 아직 어리고 금세 나아질 거라는 믿음.


둘째가 태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아이는 퇴행을 시작했다.

말을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무~(물), 음마(엄마) 등을 하던 아이가 입을 닫았고 이따금씩 커튼뒤에 숨어 까꿍을 하면 웃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저 멍하니 앉아있는 날이 늘었다. 

블록을 끝없이 위로 쌓다가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숴버렸다.

그뿐이면 다행이었을 텐데 각성이 심한 우리 아이는 밤에도 잠을 자지 않았고 빠르게 잠이 들면 새벽 1시 그렇지 않으면 밤을 꼬박 새워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혹시나 듣는데 문제가 있나 싶어서 청각 검사를 위해 투여한 수면제를 3시간이나 버텨냈고 의사마저 검사를 포기했을 정도였다.  겨우 검사를 마친 뒤에도 수면제 때문에 서너 시간은 더 잘 거라는 의사의 말이 무색하게 아이는 검사가 끝나자마자 깨버렸다. 

아이는 엄청난 텐션으로 놀다가 기절하듯이 픽 쓰러져 한두 시간이라도 자고 나면 금세 회복이 되었지만 그 사이에도 둘째까지 돌봐야 하는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낮에 아이를 돌보며 밤에도 자지 못하는 생활이 며칠씩 이어질 때는 걸어 다니면서도 잠을 자는듯한 기분이 들었고 이따금씩 정신이 뚝뚝 끊어져 기억이 나지 않는 때도 있었다. 혹시나 자는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잠드는 것에 죄책감까지 느끼던 시기였다.


밤에 아이가 노는 소리가 다른 집에 들를까 싶어 둘러업고 동네를 배회하기도 했고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다니기도 했다. 


의사는 7살까지가 골든타임이라고 했다. 

수소문하여 잘한다더라 하는 선생님을 찾아다녔지만 이미 예약과 대기가 넘쳐서 우리 아이까지 순서가 오기 힘들었다. 


세상에는 언어, 감각통합, 재활체육, 음악, 미술, 인지, ABA 등등 수많은 치료가 있었고 재활센터의 선생님의 역량은 정말 천차만별이었다. 또, 내 아이와 맞는 선생님과 그렇지 못한 선생님들이 있고 좋은 선생님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수업을 진행해 보는 수밖에는 답이 없었다. 

우리 아이의 경우 새로운 선생님과의 적응에 두어 달 정도는 필요했는데 그렇게 적응하면 너무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선생님 센터를 그만두거나 혹은 우리 아이가 선생님에 대한 거부가 심해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그냥 시간과 돈만을 소비한 것 같은 허무함을 안겨줄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아예 입을 닫아버린 아이에게는 무발화 치료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기도 화성에 있는 센터까지 매주 2회씩 혹은 3회씩 인천에서 화성까지 1년이 넘도록 왕복을 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하원 후 가까운 곳 먼 곳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이동하며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일은 아이에게도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까운 곳은 산책 삼아 걷기도 하고 차를 타는 시간도 짧았지만 하루에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네시 간이상 일주일에 단 40분의 수업을 들으려 화성까지 오가는 길은 생각보다 피로도가 극심했고 또 위험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나니 원래도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건만 생활비에 수업료에 검사비까지 다달이 마이너스였고 그 수천의 빚은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래도 희망을 놓을 수 없었던 건 경계성이라는 말로 7살까지 라는 정해진 기간 안에 달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검사는 늘 경계성이었다. 그 경계성이라는 말이 참 무서웠다. 희망고문이라 하던가 희망과 좌절을 수시로 번갈아 느껴가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우리 아이는 결국 중증 자폐판정을 받았다. 

좋아질 거라는 생각에 미루고 미루던 일이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부족한 특수학교 입학정원은 경계성아이의 입학이 힘들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시절의 경험들로 우리 아이는 자폐가 맞을 거란 걸 어렴풋이 아니 사실 거의 확실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의사입에서 들으니 참으려 해도 눈물이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목표였던 정상발달을 위한 전력질주하던 시절보다는 조금 유연하게 언어와 음악, 감각통합과 , 승마정도로 최대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겁게 진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지금의 목표는 퇴행이 오는 것을 막는다는 정도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그사이 나도 조금 변했다. 

치료센터에 가면 아이를 센터 수업에 들여보내고 엄마들이 대기실에서 삼삼오오 기다리다가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은 쓰러지듯 대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었는데 그때 한 엄마가 해주었던 말이 있었다.

"포기도 좀 해. 그래야 살아. 엄마가 지치면 아무것도 못해." 그러면서 건네준 쿠크다스 두 개.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그 두 개의 쿠크다스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보면 아빠가 우영우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이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극 중에서는 아빠가 아프거나 다쳐도 의미를 두지 않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현실은 장애아의 부모는 아이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외면받고 있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모르기 때문이다.  

임신을 하면 길가에 임산부들이 눈에 띄고 아기를 낳으면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기 있는 집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게 눈에 보인다. 그렇듯 알아야, 알고자 해야 보이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스스로도 보이지 않으려 애쓴다.

나조차도 우리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선을 긋고 있다.  혹시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트러블을 일으킬까 놀이터 가는 것조차도 사람이 뜸한 시간을 선택한다.


일단 트러블이 생기면 이유여하에 관계없이 사과부터 하는 버릇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아이가 아무 의도도 없이 한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지게 겁먹고 피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너무 무지한 경우가 많다. 


'저런 애'라는 말을 들었다.

놀고 있는 우리 아이에게 또래의 아이가 다가왔다. 

그 순간 우리 애가 항상 내던 그 이상한 외계어를 했고(그냥 기분이 좋아서 흥얼거리는 느낌이다) 그 옆에 있던 애엄마가 자기 애를 낚아채더니 우리 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저런 애랑 왜 놀려고 그래?"라고 말했다.

'저런 애'라는 말이 비수처럼 콕 박힌다.  닿지도 않았건만 자기애의 옷을 툭툭 턴다.


"옮는 거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또 싸움이 될까 싶어 속으로 삼켰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그 돌 하나에 개구리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재빠르게 피했을 수도 있었을 거다. 그저 단 한 번이었다면. 

하지만 그렇게 다수의 사람들이 연못에 계속해서 돌을 던진다면 한 번 두 번 피할 수 있는 횟수는 줄어들고 연못가지 돌로 가득 메워지고 나면 살 곳을 잃은 개구리는 결국 죽게 될 것이다. 


세상 어느 누가 그럼 삶을 선택할까? 선택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다 건강하고 희망찬 삶을 고르겠지. 

장애를 가진다는 것은 선척적이든 후천적이든 불편하고 슬픈 일이다. 

그것은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은 장애를 가진 그 당사자 혹은 그 가족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생의 건강을 확신할 수 없듯이 장애도 그것이 선택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장애는 장애일 뿐 그리고 그저 아이는 아이일 뿐. 

편견 없이 기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이 세상에 한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욕심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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