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1

죽을 끓이며

by Sun lit



콩죽을 끓인다.

날이 춥고 건조해지면서 시작된 몸의 계절앓이를 달래 주기 위해서다.


물을 넉넉히 잡아서 끓이던 쌀이 푹 퍼져 익으면 날콩가루 몇 스푼을 풀어 넣고 잘 저어준다. 콩비린 맛이 가시고 구수해졌다 싶을 때 소금으로 간을 맞추기만 하면 되는 참 만들기 쉬운 죽.


연 노란색 뜨거운 죽을 한 숟갈 뜨면 유난한 것 없이도 넉넉하던 할매 인심처럼 편안한 맛이 목구멍과 위장 벽을 넘어 마음 안에까지 뭉근히 차 들어온다. 어쩌면 내가 처음으로 콩죽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이 그 맛 속에 깊이 잠복하고 있다가 그 냄새와 김을 타고 모락모락 부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주 할매는 조그만 얼굴에 균형 있게 들어선 오뚝한 코와 큼직한 눈, 갸름한 몸통 위아래로 가늘고 긴 팔다리를 가진 노인이었다. 당시의 안목으로는 결코 참하다 할 수 없는 외모였지만 훗날 돌이켜 봤을 때 그 생김새나 사고방식은 시대를 앞질러 묘하게 현대적인 사람이었다.


호탕하고 독립적인 성품에 언문을 익혀 책 읽기는 즐겨했지만 음식이나 살림 솜씨라고는 도통 없던, 당시로선 평범하지 않았던 여인. 아버지의 고모 - 내 왕고모였다.


총명과 이지라는 미덕이 여자에겐 불리함이던 시절, 그녀는 남편을 일찍 잃은 과부였고 홀로 공을 다해 키운 당신의 외아들 또한 마흔 나이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보낸 소위 팔자 드센 여자였다.


삶이 무상해지자 할매는 훠훠 흘러 다니는 보따리장수가 되었다 한다. 생필품을 등짐 지고 동명 구석 마을과 대구 큰 시장 사이를 풍류객처럼 오가다, 나이 들어 그럴 기력도 다했을 즈음 마을 한켠 빈 집에 들어 수도자처럼 고요히 살다 떠났다.


어린 내 눈에도 할매의 큰 눈은 깊어 보였고 남자처럼 호방하게 웃을 때도 그 끝이 바람이 잦는 듯한 소리로 들렸음을 기억하고 있다. 서문 시장에서 떼어간 잡화들을 시골 마을에 가져다 팔아서 최소한의 생필품과 끼닛거리를 구하는 일 외에는 세상에 아무런 미련 없이 살던 노인.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나는 당시 할매에게서 느껴지던 것들이 삶의 시림과 쓰라림이 만든 그림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따금 성주 할매는 장을 보아 동명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러 며칠씩 쉬어가곤 했었다. 마루에 털썩 등짐을 떨어뜨리며 들어서던 성주 할매를 우리 식구 모두는 달려들다시피 얼마나 반겼는지. 할매라 불렀지만 실상은 우리를 키우는 유모였던 우리 할매에게 성주할매는 특히나 더없이 반가운 손님이자 친구였다.


우리 할매의 음식 솜씨를 몹시 사랑하던 성주 할매는 감탄사를 발해가며 맛있게 저녁식사를 마친 후면, 부리나케 설거지를 끝내고 들어서는 할매를 앞에 앉히고 그 재미난 고전책 낭송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매운바람이 창을 흔들고 세상은 소리 없이 잠들어 가는 겨울밤. 따뜻한 아랫목에 얼굴만 내밀고 누운 내 머리맡을 두른 두 할매는 따뜻한 이불이고 조근조근한 자장가 였다. 한 노인은 돋보기를 코에 걸고 만고역적 정한담이를 시원하게 응징하는 유충렬전이나, 박색의 구박데기가 미색의 능력자로 탈바꿈하며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박씨전 등을 유창하게 읽어내려갔고, 글 모르는 한 노인은 몰입의 낯빛으로 낭독자의 목청 따라 별천지에 빠져들어 창 밖으로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두 노인이 만들어 내던 그 밤의 풍경은 내 가슴속에 한 폭 그림으로 들어 앉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 하나하나는 할매의 맛있는 입담으로 새롭게 각색되어 옛날 이야기를 조르는 우리 머리맡에서 끝없이 리와인드되곤 하였다


흰 눈 쌓이는 겨울밤, 모기장이 드리워졌던 더운 여름밤, 귀뚜리가 쉼 없이 치르륵대던 가을밤의 그 정경들은 내 가슴과 뇌리에 깊은 굴을 파고 무슨 씨앗 같은 것을 야무지게 묻었나 보았다. 세월을 살아남은 그것들이 나 모르게 싹을 틔워 내 삶의 땅 한 쪽에 콩죽 같은 연노랑색 열매 몇 개를 맺은 듯한데 나는 여전히 그것들에게 분명한 이름을 주지않고 있다.


고등학생이 후엔 여름 방학 동안 성주 할매의 시골집에 며칠 유하는 일이 가끔씩 허락되었는데 ‘이쁘고 영특한’ 질녀가 당신 거처를 찾아주는 것이 흡족했던 성주할매는 유난하지 않은 당신식의 정성으로 나의 휴가를 행복으로 채워 주었다.


음식 솜씨가 없던 할매로서는 나에게 세끼 밥을 지어 먹이는 일이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었을 텐데 뜻밖에도 나는 할매가 차려주는 밥상을 매번 말끔하게 비우곤 했다. 생선이나 육류를 비위 상해하던 할매의 식재료는 주로 뒷마당에 무성하던 깻잎이나 푸른 고추, 이웃집 닭이 낳은 하얀 달걀 등이었는데 그것이 외려 별미보다 내 식미에 더 맞았던 모양이었다. 아니 그 자체가 별미였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끼니때면 나는 맨질맨질한 부뚜막에 올라앉아 할매가 콩죽을 젓는 모습, 김이 오르는 밥 솥뚜껑을 열고 밀가루에 몇 번 뒤적인 풋고추나 씻은 깻잎 다발을 밥 위에 얹어 찌는 모습을 재미나게 구경하곤 했었다. 할매는 ‘이게 뭐 구경 거리가 되느냐’ 하면서도 내가 굳이 구경하겠노라 우기면 ‘허허 그 년 참’ 하는 남자 같은 소리로 웃으며 천조각을 내 엉덩이 아래 깔아주기도 했었다.


내가 콩죽을 맛있어하는 것을 알고 나서 할매는 자주 콩죽을 끓였었다. 복닥복닥 솥 안의 쌀이 끓으면 동명 시장 방앗간에서 사 온 날콩가루 몇 줌을 집어서 뿌리고는 내 눈에도 별로 잘한다 싶지 않은 모양새로 휘휘 젓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싱싱하게 저장되어 있다. 방금 지은 따뜻한 밥에 다진 파와 풋고추를 띄워 만든 양념장이랑 먹던 찐 야채들이 몇 날 며칠을 이어 먹고도 물리지가 않던 기특했던 내 입맛과 함께.


작은 냄비에 혼자 먹을 만큼의 콩죽을 끓이며 성주 할매를 추억했다. 얌전하게 뒷맛을 만족시키는 구수한 콩죽을 한 술 뜨며 할매의 만년을 채우고 있었을 고독과 회한도 짐작해 보았다. ‘지금도 한 번씩 속에서 화가 올라온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며 가슴을 퉁퉁 치던 성주할매 앞에서 우리 할매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었다.


나를 내려다보며 부어 주었던 그들의 사랑과 슬픔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슬프다 한마디 말한 적이 없는데, 그리고 이토록이나 많은 세월을 흘려보냈고 이만큼이나 멀리 떠나와서 살고 있는데, 콩죽이 풍기는 연한 내음 한 줄기에 홀연 불려 나와 말을 건넨다. 우리가 네 안에 살아 있노라고. 목청보다 더 생생한 소리로.


그러니 정말로 없어져 버리는 것,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란 없다고 믿게 된다. 존재를 시작한 것은 모습이 바뀔지언정 존재하기를 그만두지 않는다고.


고향이 그립다.

고향의 토양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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