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2

레이스 마지막 단

by Sun lit
실제 당시의 내 방을 그렸던 유화에 AI 이미지를 조합한 이미지


여중 3년 때니까 내가 열다섯 살 적이구나.

공부야 시험이야 길게 놀 틈이 아쉬웠던 시절, 방학이 되기만 하면 실컷 하리라 벼르는 일들을 작은 수첩에 꼬박꼬박 적곤 하던 소위 위시 리스트 중에 뜨개질이 있었다. 그땐 왜 그리 하얀 레이스 피스들이 매혹적으로 예뻐 보였던지 그것을 만들어갈 생각을 하면 미리부터 행복해지던 그때의 내 마음을 돌아보면 웃음이 돈다.

정말 이쁘고 흔치 않고 거실 탁자 위에 깔면 딱 어울릴 레이스를 짜겠다는 옹골찬 마음을 먹었던 기억이 나니 아마도 동아백화점이나 대구서점 뜨개책 코너를 샅샅이 뒤져 나름대로 고르고 고른 도안이었을 것이다. 지금 봐도 손색없이 예쁜 디자인이다.


그러나 그때 무렵 나의 위시 리스트라는 것이 대체로 시작 전의 마음으로 끝을 보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 달 정도의 여유 시간에 비해 하고 싶거나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던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용두사미를 껄끄러워 않던 내 천성 때문이었던 듯도 싶다.


벼름과 준비에서부터 무척 장엄하기까지 했던 출발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 레이스 피스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대학 교정에까지 이따금 들려 다니며 몇 단씩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던 끝에 결국 내 책상 맨 아랫칸 서랍 안으로 유기되는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많이 희미해진 기억들 속에서도 하나 분명한 건, 내가 하다 하다 안 되는 무언가에 치일 때 손에 뭐라도 쥐고 움직여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 때면 곧잘 이것의 존재가 떠오르곤 했다는 사실이다. 몇 년에 한 번 정도의 빈도로. 그러면서도 정작 완성에 대한 욕심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이 레이스와의 그런 역사가 이후 수십 년 인생살이 동안 폐기의 위험을 모면하면서 지금껏 내 이사 상자 속에 묻혀 하늘도 날고 바다도 건너며 날 따라다니는 물건이 된 이유일 것이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는 오늘 이것을 상자 바닥으로부터 뒤져내어 완성하려는 결심을 했다. 투명 봉지 안의 종이 도안은 삭아서 거의 부스러질 지경에 이르렀고 하얀 면사 뭉치는 누렇게 색이 변해 있었다. 본과 대조하며 자세히 짚어보니 마지막 단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어서 난데없는 결심에 용기까지 보태졌다. 알 수 없는 희열에 들뜨며 실타래와 코바늘을 빼들고 앉으니 홀연 아득한 시간 건너편의 내 방 정경이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다가서며 아뜩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삶의 순간들에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타자성은 살아볼수록 부인할 길이 없다.


매운 공기 날카롭게 붙어선 커다란 창문 안 쪽, 햇살이 창무늬를 떨어뜨려 놓던 노란 방바닥의 그 따뜻함이 생각나서 불이 들지 않는 마루 바닥에다 작은 담요를 내어와 앉아 본다. 밝고 따뜻한 방 안에서 담요로 무릎을 덮고 앉았던 열다섯 살의 나는 애초의 그 예쁜 것에 대한 치기 어린 욕심 외에 섬세한 레이스의 작고 작은 땀들을 짜가는 동안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창 밖 추위의 두려움을 창 밖 세상의 실정만큼 알지 못하던 둥지 안의 새끼 새와도 같던 그때 그 나이에. 물론 그 때라고 삶이 동화처럼 매끈하게 이쁘기만 했으랴만.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나를 감싸주고 있던 따스함과 평온함의 기억이 시간을 축지하며 육성처럼 말을 걸어온다. 지나간 것들, 비록 그것 안에 상처가 섞였다 하더라도, 오늘의 너를 심각히 해치고 있지만 않다면야 향수로 포장한들 무엇이 이상하랴며. 그 소환의 주인공이 한 겹 한 겹 풀어져 새어 나가 버린 당시의 아우라인지 그것을 돌아보고 있는 나 자신인지는 잘 알지 못한 채로 나는 마음을 끄덕인다.


마당 중간 작은 연못 가의 목련 나무 벗은 가지가 매운바람을 견디느라 종일 울어대고, 얕게 고여 꽝꽝 언 물이 햇살에 번쩍이던 겨울, 넘치게 남은 생의 시간과 안전하게 비벼도 좋은 울타리에 둘러싸여 삶의 배고픔과 추위를 모르던 시절. 아마도 나는 그 시절의 흔적 하나를 손에 쥐고서, 수많은 겨울을 흘려보낸 겨울 없는 땅에서 늙어가며 겨울의 따뜻함이라는 역설 안으로 기억의 도르래를 내려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닿지 못한 내 영혼의 깊은 바닥으로 두레박을 담그는 일은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손잡이를 돌리는 힘은 더 이상 예쁘장한 매혹이 아니라 거부를 무력화시키는 모종의 고통 같다. 무의식의 중력이 언제나 정직함은 나 자신에게조차 달리 설명할 길은 없지만.


기억의 동굴이 품고 있는 유희의 본질을 향한 하강을 생각하고, 희미하고 모호하고 좀처럼 체험되지 않는 겨울의 태 속 잘박이는 봄의 배냇짓을 상상하며, 작게 오므라든 코 가운데로 가느다란 바늘을 꽂는다. 또 다른 코를 만들 실을 걸어 올리면 낚시의 기쁨도 알 것 같아진다. 아직은 소설 같은 진실이 말한다 - 행복이 산자들의 당위라는 프레임을 너 역시 오래도록 뒤집어쓰고 살아왔었다고.


이 마지막 단이 완성되면, 표백 세탁을 해서 빳빳하게 풀을 먹이고 매끈히 다림질을 할 것 같다. 애초에 그렸던 그림 속의 탁자는 이제 없지만 이 레이스 피스가 빛내줄 물건은 이 집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니까. 어쩌면 귀하다고 소장이나 벽장식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물건의 가치가 꼭히 실용성을 발휘할 때 드러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정도는 알만큼 나는 이미 많은 물건들과 만나 보았으므로.


시간을 과거와 현재, 미래로 토막 내어 섭취하는 습관이 잠시 정지했던 오늘 하루의 놀라움.


'사진을 봐서 이해는 했다마는 내용을 읽어보니 소설 같은 거 있지. 또 한 가지, 그때 그 스덴드 전등 아직 보관하고 있지? 맥이 상통하는 것 같다. 그것이 네 천성이다. 소중히 간직하렴~'

윗글을 카톡으로 보내드렸더니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답글.


매거진의 이전글겨울 이야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