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3

봄과 겨울 사이 그 해 겨울

by Sun lit


준우 방에서 내려다본 호수와 옥수수밭

준우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단순한 밤풍경이 적요 속에 아름답다. 지윤이는 진통을 시작했을까? 케니가 분만실 상황을 궁금해할 가족들을 위해 열어놓은 카톡방은 아직 조용하다. 잠자고 있을 우리를 위한 배려거나 아직은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지윤이가 아기를 낳는다. 31년 전 이른 새벽, 먼 도시 런던의 노스윅팍 병원 분만실에서 날 원시적으로 발버둥 치게 만들며 세상으로 왔던 아이가, 내 엄마가 그랬고 내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 한 생명을 세상으로 데려오기 위한 진통의 마지막 고비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잦지 않는데도 차오르는 샘물 같은 감회 위를 알 수 없는 내적 고요가 덮고 있다.


이 시간도 변함없이 나는 밤을 지새운다. 추수가 끝나 발가벗겨진 너른 옥수수 밭 가운데에 새파란 밤하늘을 담고 앉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방, 말끔하게 치워지고 예쁘게 꾸며지고 부족함 없이 준비된 곧 도착할 아기의 방에서, 슬리핑 백 속에 코쿤처럼 들어가 누워 긴 겨울밤을 지새운다.


불면을 등짐 지고 사는 나에게 또 한 번의 구원을 기대하게 만든 슬리핑 백을 돌돌 말아서 여기까지 가져왔다. 새끼 캥거루처럼 그 안으로 들어가 지퍼를 닫으면 왠지 잠이 들 수도 있을 같은 안도를 주는 가벼운 주머니. RV 여행을 고려하며 구입해 본 구스다운 슬리핑 백은 그 안으로 한번 누워본 이래 즉시 침대 위 침구까지 대체하는 가장 단출하고 만만한 나의 이부자리가 되었다. 조촐한 침구, 간편한 복장, 간소한 밥상, 단순한 일상이 몸에 맞아진 즈음에 할머니가 되어서 참 다행이다 싶다.


혹여나 놓쳤을 무음의 핸드폰 화면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넓은 창밖을 습관처럼 응시한다. 말끔한 겨울 옥수수 밭 너머로 푸른 잎 물결치는 후년이 그려진다. 파랗게 노랗게 나고 무르익는 풍요한 들판이. 준우야 어서 오너라 할머니는 네 삶의 둘레에 펼쳐진 맑은 풍경이 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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