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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Oct 26. 2019

이상화와 미숙한 사랑


사람에게 속해 있는 특질과, 연인이 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특질 사이엔 어느정도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상대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걸까.


<500일의 썸머>

우상 숭배적 사랑은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랑의 한 형태이다. 상대를 우상화하고 자신만의 뮤즈로 삼는다. 사랑의 대상을 최고 선, 빛, 행복만을 주는 자로 숭배한다. 상대의 모든 행동, 순간의 눈빛조차 특별하고 반짝반짝여 보인다. 그저 속성 한 가지를 실체 자체로 대체하는 잘못된 환유를 저지르는 것이다.


대상에게 완전한 속성을 부여하는 이상화의 과정은 그 바탕에 대상과의 동일시를 깔고 있다. 다시 말해 대상을 향한 이상화는 주체의 자기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을 동일시를 통해 대상에 투사하는 심리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아도취적이다.  
/<자크 라캉>, 김용수


이러한 사랑은 그저 상대의 속성 한 가지를 실체 자체로 대체하는 잘못된 환유를 저지르는 데 문제가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찾는 대신 사랑의 대상에게 힘을 투사함으로써, 대상 안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아가 애초에 사랑의 대상도 내 기대를 온전히 충족할 수 없다. 결국 상대도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적이고 열등한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은 언젠가 깨질 수밖에 없다.


자아도취 상태에서는 자신만이 유일한 현실이고,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이렇듯 대상을 일종의 무기력하고 박제된 사물로 바라보며 실재를 감추고 억압하는 과정에서 관계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성숙한 사랑이 아닌, 욕망을 욕망 그 자체로 옮기는 과정에 불과하다. 원하는 것은 그저 자신의 욕망이며 사랑의 대상은 단지 이러한 과정에서의 도구로 인지할 뿐이다.


나는 상상계를 위해 이미지를 희생한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그 사람을 정말로 단념해야 하는 날이 오면, 그때 나를 사로잡는 격렬한 장례는 바로 상상계의 장례이다. 그것은 하나의 소중한 구조였으며, 나는 그/그녀를 잃어버려서 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나 또한 어느 순간 내 이상향을 상대에게 투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던 면은 사실 스스로가 되고 싶은 면이기도 했다. 여태까지 그저 자기 감정의 폐쇄회로에 갇혀있었을 뿐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이제 굳이 이상향을 타인에게서 찾을 필요가 없단걸 느꼈다. 애정의 대상에게 힘을 투사하는 대신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자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선 자신을 향한 사랑 또한 자연스레 더욱 커질 것이다. 실존의 문제는 타인이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는 영역이며, 오직 자신의 힘으로서만 풀어나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에리히 프롬은 서로가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하며 관계를 만들 때 비로소 성숙한 사랑이 가능하다 말했다. 각자가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는 단계를 거쳐야만이, 비로소 서로 간의 합일이 가능하다. 그에 따르면, 성숙한 사랑은 자아도취의 상대적 결여에 의존한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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