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모티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가 Nov 17. 2019

보이지 않던 게 보이는 것

어휘력과 사고


모든 용어와 이름이 발명되기 전에는 어땠을까.

예컨대 이브가 아담에게 당신은 당나귀만큼이나 어리석다고 말해주고 싶다면, 그를 데리고 당나귀를 찾기 위해 돌아다녀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다 찾아내면 당나귀와 아담을 번갈아 손가락으로 가리키곤 펄쩍펄쩍 뛰면서 답답하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당나귀' 라는 단어를 발견한 후에는 아주 쉽게 ‘너는 꼭 당나귀처럼 바보 같아.'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번씩은 한 적이 있지 않을까. 명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머릿속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손짓 몸짓 다 해가며, 온갖 비유와 문장들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 말이다. 그러다 나중에라도 핵심을 꿰뚫는 적확한 단어를 발견하게 되면 머릿속에 느낌표!가 켜지는 기분이 든다.



어휘력의 발달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온갖 현상들을 밝게 비추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단어는 세계를 이해하는 체계와 규범을 함께 전달한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이해 방식을 가져온다. 이는 세상에 반응하는 감응판을 섬세하게 만들고, 현상을 깊이 있게 파악하는 능력으로 직결된다. 이처럼 용어의 발견은 사유의 폭을 넓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의 습득을 넘어, 그 관념을 탄생시킨 종족의 사상을 채용하는 것이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경험, 사고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게 되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개념이 자신 안에 새로이 등록된다. 이로써 나의 세계관은 좀 더 입체롭고 풍요로워진다.


이는 마치 별자리와도 같다. 소쉬르는 깜깜한 밤하늘에 인위적으로 선을 긋고 별자리를 정하듯이, 언어활동 또한 세계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별자리를 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 밤하늘의 별은 그저 '별'로만 보일 뿐이지만, 잘 아는 사람에게는 하늘 곳곳에서 '곰'이나 '사자', '백조'가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언어활동이란 '모든 분절되어 있는 '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를 정하는 것처럼 비정형적이고, 성운 모양을  세계를 쪼개는 작업  작업 자체라   있다. 어떤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이름이 붙으면서 어떤 관념이 우리의 사고 속에 존재하게  것이다.
/ 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화와 미숙한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