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행
무더웠던 작년 8월,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났다. 조금이라도 더 시원한 나라로 피신..
저녁 비행기라서 늦은 밤에서야 현지에 도착했다. 숙소까지 혼자 택시를 타기 위험하기도 하고 (처음엔 무려 혼자 러시아에 왔다!라는 두려움도 있었음)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미리 동행을 구했다. 그렇게 나 포함 4명의 사람들과 함께 택시를 탔다. 한국말이 아주 유창하신 택시 기사님은 가는 내내 조잘조잘 무용담을 늘어놓으시고 로컬 맛집을 추천해주시는 등 아주 친절하셨다.
너무나 친절하셔서였을까.. 나머지 갑자기 짧게 야간 투어를 가자는 제안을 하셨다. 독수리 전망대로. (헉) 시간도 열두 시가 다 돼가고 피곤했던 나는 빨리 숙소 가서 쉬고 싶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만 모인 공간이 기빨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들 여행이 주는 설레임 때문인지, 굉장히 업 되 계셨다. 모두가 제안에 “좋다 재밌겠다 신난다!”의 반응을 보이셨다. 거기서 혼자 “저는 바로 숙소에 가고 싶은데요.. 원래 목적지인 시내나 빨리 갑시다” 하며 산통 깰 수 없었다. 그렇게 도착 첫날, 예상치 못했던 야간 투어를 하게 됐다.
막상 오니, 바라본 밤의 전망대는 예뻤다. 블라디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바람도 살랑살랑 시원하니 불고 좋았다. 약간 서울의 한강 느낌이었다. 여유롭게 맥주들 마시며 대화하는 몇몇 현지인들 뿐이었다. 밤이라 그런지 사람이 적어서 좋았다. 다음날 낮에 갔을 땐 관광객으로 바글바글 했다.
기사님은 서비스 정신면에선 정말 따라올 자가 없었다. 100점 드려야 한다.. 흔쾌히 먼저 사진 찍어주신다고 포토존으로 가보라 하셨다. 사진도 정말 잘 찍으셨다. 그렇게 나온 사진!
그치만 예쁜 야경과는 별개로 점점 더 피곤해졌다. 긴 비행과 늦은 시간도 그렇지만 모르는 사람끼리 함께 있는 게 불편해서 그랬다. 옛날엔 스스로가 낯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가끔 처음 만났는데도 마치 전에 알던 사이처럼 자연스레 편한 사람도 있다. 요새 들어 느끼는 건 상황과 사람을 많이 타는 것 같다. 이것도 혼자 돌아다니며 깨달았다. 나랑 안 맞을 것 같은 느낌이 오거나 받아들여지지 않을 듯한 분위기면 지레짐작 입을 닫게 된다. 에너지를 아끼게 된다. 그 상황을 최대한 빨리 피하고 혼자 있고 싶어진다.
그렇게 야경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도착했다. 늦은 비행기에 첫날은 잠만 자는 곳이니,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 놨었다. 이층 침대 두 개가 놓여있는 4명 방이었다. 열두 시가 넘은 시각이라 불도 꺼졌고 다들 잠들어 계셨다. 꼴찌로 늦은 체크인을 한 나는 조심조심 방으로 들어왔다. 무지 신경쓰였다. 마침 또 남은 침대는 이층이었고, 핸드폰 후레쉬를 키며 힘들게 올라갔다. 찝찝하니 씻어야 하고 또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아악..! 지금 생각해도 너무 불편했다. 게다가 나는 소음에 젤 예민해서 집에서도 귀마개 없음 잠이 안 온다. 지금 쓰면서도 스스로가 뭔 생각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아무튼 그 날은 6시까지 한숨도 못 잤다. 잠자리도 바뀌었고 공용 화장실이라 제대로 못 씻은 것도 신경 쓰이고, 소음도 거슬리고.. 잠도 안 올 바에 일어나서 면세 물건들 포장이라도 뜯어보고 싶은데, 다들 주무시니 일어나지도 못하고. 결국 해 뜨자마자 바로 나갈 준비를 했다. 제일 늦게 체크인해서 제일 빨리 체크아웃을 했다. 첫날을 그렇게 시작하니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병든 닭 상태에서 아무리 맛있는 거 먹거나 좋은 거 봐도 와 닿을 리 없었다. 여행 셋째 날은 친구가 오기로 해서 다행히도 호텔을 잡아 놨었다. 그때서야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상황에 나를 던져놓는 것만큼 스스로를 잘 알 게 되는 방법이 없다. 이렇듯 새로운 상황을 접하고 안 해본 걸 도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깨달은 게 많았다. 모든 여행은 다 그렇지만 혼자 떠나는 것은 더더욱 많은걸 남기는 것 같다. 나에겐 볼 것이나 먹을 것보다, 숙소가 훠얼씬 중요했다. 원래도 사람 많고 공용으로 함께 쓰는 시설을 안 좋아해서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하지 않긴 했다. 그래도 뭐 잠만 자는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시간 들여 열심히 찾거나 돈 좀 더 내고서라도, 모든 게 개인 시설인 숙소가 맞는 성향이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투자를 해야만 비로소 여행이 원활히 굴러갔다.
스스로가 어떤 성향과 취향의 사람인가 머리로 어림짐작 아는 것엔 한계가 있다. 그것이 확실하지도 않다. 백날 시뮬레이션 돌려도 머리로만은 모른다. 예상치 못하게 잘 맞을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생각이 아닌 경험에 속하는 영역이었다. 이를 여행, 특히 동행자 없이 혼자 내던져진 상황에서 직접 체험해보는 것만큼 와 닿고 값진 것이 없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