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우리 집은 항상 깨끗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닥은 먼지 한 톨 없이 빠닥빠닥했고, 화장실도 곰팡이는커녕 물때 한 번 본 적이 없고, 물건은 늘 제자리에 놓여있었다. 울엄마는 정리수납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외동딸을 훌륭하게 잘 키워낸(!) 살림의 여왕이었다.
그런 엄마가 보면 등짝스매싱을 바로 날릴게 뻔한 내 집. 아이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기엔 아이물건이 아닌 것도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민망하다. 나도 엄마처럼 전업주부이지만 그 실력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학부생시절, '지속가능한 건축'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여기에서의 지속가능은 건축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나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 등에 관한 내용인데 나는 그 단어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공생, 지혜로움'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까.(그것을 주제로 쓴 리포트가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의 인생에서 '지속가능'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개념이 될지도 모른 채 말이다.
가끔 큰맘 먹고 집안을 뒤집어서 싹 정리를 할 때가 있다. 의욕적으로 수납바구니를 사 와서 옷을 계절별로 분류해서 넣고, 아이 물건도 비좁은 수납장에 테트리스하듯 차곡차곡 넣는다. 정리가 다 된 집을 둘러보면 일단은 깔끔해 보이지만 A에 있던 것을 B로 옮긴 것뿐 아닌가라는 물음표가 생긴다.
그러고 보면 집안일 중 정리수납만큼 지속가능이 필요한 항목이 또 있을까. 건축에서 뿐만 아니라 정리수납에서도 '지속적으로 실천 가능한'은 중요한 논제이다. 매일 습관적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금세 원래상태로 돌아가고 말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능한 정리수납전문가가 왔다 갔어도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면 결국은 내가 조금 더 움직여야 한다. 틈새시간에 간단하게라도 정리를 하는 날은 덜 어수선하고, 몰아서 해야지 하는 날은 결국 그대로 두고 자러 가기 일쑤이다. 아무리 날 잡고 정리를 해도 그 상태를 지속한다는 건 감량한 체중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요리를 하고 나면 주방은 쉽게 엉망이 된다. 찬장과 냉장고 안에 밀어 넣어 감춰뒀던 물건들이 죄다 나와서 싱크대며 가스레인지며 식탁이며, 어수선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것을 깔끔히 정리하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싱크대 상판을 행주로 슥 한 번 훔친 뒤 주방의 불을 탁 끄고 멋지게 퇴근하는 모습은 늘 내가 꿈꾸는 하루의 마무리이다. 현실은 오늘도 주방퇴근은 남의 나라일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