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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름 Jul 30. 2024

미니멀라이프의 가장 큰 적은?

나 빼고 다

많은 주부들이 한 번쯤 설레는 물건만 남기는 걸 시도해 봤을 것이다. 그렇다. 미니멀라이프 말이다. 당연히 나도 애증의 그것을 시도해 보았고 나름대로 현재진행형이다.


사은품이라도 필요치 않으면 받지 않고, 가능하면 물건 살 때 봉투도 받지 않는다. 틈틈이 아이 장난감을 정리해서 엘리베이터 나눔을 하고 일 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버린다. 나 혼자 이런 노력을 이어가도 남편이 가끔 사 오는 물건과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오고 만들어오는 물건들로 집안은 늘 물건이 많다. 내 미니멀라이프의 가장 큰 적은 남편과 아이인 것 같다. 즉, 나 빼고 다다.


수년간 이렇게 생활한 결과, 우리 집 물건 지분 중 내 것은 10% 정도가 되었다. 다 같이 쓰는 수건, 식기, 가구 등을 제외하고 오로지 나만 사용하는 물건이 그 정도이다.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되니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나눔 해서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죽으면 유품정리하기 쉬울 것 같아서 뿌듯하다. 어느 날 문득 이 사실을 알아채고 남편에게 말을 했다.


- 내 물건은 정말 없네. 부피가 큰 거라곤 요가매트 밖에 없고.

- 안마의자는?

- 그건 여보가 쓰려고 산 거잖아.

- 근데 당신이 더 많이 쓰잖아.

-... 어쨌든 그건 공용용품이지 내 물건은 아냐. 난 무소를 실천하는 중인가 봐!

- 복층집 살면서 매년 해외여행 가고 벤츠 타는 가???


우리는 무소유라는 단어와 나라는 사람의 부조화가 너무나 웃겨서 끽끽 대고 웃으며 거실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너무 웃어서 아픈 배를 쥐어 잡고 겨우 변명을 이어갔다.


- 그래도 물건은 별로 없잖아!


소유하고 있는 물건의 개수가 적으면 무소유는 맞다, 무소비가 아니어서 그렇지.


미니멀라이프라고 하면 집안에 물건 하나 없이 빈집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미니멀라이프가 곧 무소유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건 아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그리고 의미가 있는 것만 소유하는 심플한 생활을 미니멀라이프라고 부른다. 넓은 의미의 미니멀라이프는 물건뿐만 아니라 생각습관, 식습관, 소비습관, 인간관계 모두가 포함된다.


나는 물건을 사지 않는 건 잘하는 편이다. 집에 물건이 쌓이는 게 싫고, 그것을 관리하는 데에 드는 에너지가 아깝기 때문이다. 옷 사는 것도 싫어한다. 꾸미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고 남들이 내 옷차림을 어떻게 보든 크게 개의치 않는 타입이다. 남편이 탑텐에서 산 회색 후드 석장을 3년 입고 내게 물려(?) 주었는데, 내가 3년째 잘 입고 있다. 좀만 더 버티면 아들까지 가능할 것 같아 10년 채우고 신기록을 세우길 기대하고 있다.


집안에 들이는 물건 중 진열용 물건은 더더군다나 질색한다. 음악의 이응도 모르는 우리에게 마샬스피커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소위 '있어'보이면 산다. 그리고 유지관리는 내 몫이 된다.


하지만 써서 없어지는 소비에는 지갑이 술술 열린다. 여행이 그렇고, 외식이 그렇고, 비싼 운동프로그램이 그렇다. 놓고 사용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일까. 물건 그 자리에 남아서 먼지에 뒤덮인 채 '나를 성실히 활용해라, 주인!' 이런 오라를 내뿜는 걸 볼 때마다 부담스럽다.


앞서 말했듯이 넓은 의미로 미니멀라이프를 제대로 하려면 사실 나의 소비습관은 전혀 미니멀하지 않다. 생각습관도 마찬가지. 물건만 적다고 홀가분한 인생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에겐 여전히 묵직한 습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아있는 것 자체로 소비이고 소유인 세상에서 어떻게든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려면 정신줄을 꽉 붙잡아야 한다. 이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보면 저걸 버리지도 못하고 정리하지도 못해서 한숨이 나오지만 우리 집 미니멀라이프의 적은 알고보면 나 포함 전부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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