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주차장에서 막 차를 타려는데, 저 멀리서 나를 부르며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낯이 익은 듯 익지 않은 얼굴이다. 자세히 보니 다른 클래스를 강의를 하는 강사님인가 싶다. 그제야 멋쩍게 인사를 나눈다.
“네. 안녕하세요?”
“주차권 좀 여쭤 보려고요. 주차권 어떻게 받으셨어요?”
“사무실 가셔서 차 번호 말씀하시고 발급해달라고 하시면 돼요.”
“아, 그렇구나. 주차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여쭤봤어요.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얼른 가셔서 처리하시고 가세요. 나중에 뵈어요.”
그 해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매해 겨울이 다 춥지만 대구에 온 지 얼마 안 된 그 해 겨울, 나는 올케에게 인수한 구형 자동차를 몰고 한 달간 모 대학으로 강의를 하러 다녔다. 시린 날씨 덕에 털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솜이 잔뜩 들어간 부츠에 바지를 구겨 넣고 퇴근하던 길이었다. 방학 중에 하는 강의는 길어야 한 달인 데다 강의처가 분기나 월별로 자주 바뀌는 탓에 나는 일을 하는 동안 별달리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는 않는 편이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강의 자체가 워낙 진이 빠지는 일이라 사람에게까지 에너지를 쓰기도 힘든 데다 본래 성격도 다소 내향적인 편이어서 강의 중 내가 먼저 인사하고 친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는 일에 따라 매번 바뀌기는 하지만 성격 유형 검사에서도 나 같은 사람을 따뜻한 로봇이라 칭하는 걸 보면 영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그런 나에게 어떤 이유나 용건으로 가끔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이 사람들과 백이면 백 친해진다. 그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주차장에서 짧게 인사를 나눈 이후 복도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안부를 물으며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그 후에 차를 마시며 급속히 친해졌다. 무료함이 싫어서 인지 솔직해서 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대화를 시작하면 가감 없이 내 이야기를 술술 하는 편인 데다, 케미가 통하는 사람에게는 무장해제된다고 할까? 그녀와도 그랬다. 분명 잘 모르는 사람인데 말이 너무 잘 통했다. 당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방송 일도 같이 하던 그녀에게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번화가 주상복합 1층 커피숍에서 만난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서로의 신변을 털어가며 이 얘기 저 얘기 나누었고 마치 소개팅에서 만난 남녀처럼 서너 시간을 그렇게 보냈던 듯하다. 그렇게 인연이 이어져 그 후 우리는 서로의 삶에 다리 하나 깊숙이 걸쳐 놓고 서로의 인생사에 훈수를 놓으며 친히 개입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내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인플루언서’인 셈.
인플루언서라는 단어가 웹 상에서 색을 덧입으며 상업적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을 위해 다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나는 그 단어를 그런 방식으로만 생각지는 않는다. 특정인이 입고 쓰는 물건이나 장신구, 옷들이 파급력이 높아 많은 대중에게 영향을 끼칠 때, 사람들은 그들을 ‘인플루언서’, 즉, ‘영향력이 있는 유명인’이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해,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소비적 삶을 업그레이드해 준 이들만을 그렇게 칭한다면 어휘의 의미가 너무 한정적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가끔 번역일을 하다 보니 단어들의 가치와 무게에 혼자 민감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어휘의 태생까지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언어가 통용되는 대중적 의미를 조금 배제하고 볼 때 많은 팬들에게 실물적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을 나는 그다지 인플루언서로 보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착용하는 브랜드나 물건을 보기도 사기도 때로는 추천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 파급력 있는 SNS 스타들이 인플루언서까지는 아닌 셈이다. 서론이 긴 이유는 그 누군가의 인생에 대한 한 사람의 영향력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처음 만날 당시 그녀는 라디오를 진행하며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이었다. 성격도 정확하고 시원한 데다 하는 일에도 열정적이며 오가는 만남에 매너도 갖춘 게다가 취향마저 비슷한 그야말로 ‘통(通)’하는 여성이었다. 당시는 내가 서울에서 대구로 다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한 친구들과의 만남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재미난 일이 없던 때였는데,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이 어색할 때쯤 우연히 알게 된 그녀는 내게 신선한 바람과도 같았다. 이십 대에 모두 결혼을 하고 연이어 출산을 한 친구들에 비해 아이가 없던 나와 싱글이었던 그녀는 우선 이야기가 잘 통하고 기질도 비슷해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서로의 대소사를 시시콜콜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지나간 이야기지만 세상에 방송을 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적어도 그때까지는 없었으므로) 알게 해 준 것도 그녀이고, 내 대학원 전공 학과를 우연찮게 알려준 것도 그녀다. 물론 그녀는 그럴 의도가 없었겠지만 삶 자체가 영향력이 있으면 그 영향력은 애써 발휘하려 하지 않아도 삶 속에 녹아 주변으로 스며든다. 온갖 인맥 동원하지 않아도 삶 자체가 하나의 영향력이 되어 스스로 자기장을 펼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삶에 반쯤 나를 포개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시절을 북돋워 그녀와 함께 성장했다. 물론 나이로 보면야 내가 앞서야 하지만 앞서고 뒤서는데 꼭 나이가 우선이랴. 우연찮게 방송을 하게 되며 기본기도 없던 나를 바로 투입되어 진행할 수 있도록 트레이닝시켜 준 것도, 맨 땅에 헤딩하듯 준비 없이 입학한 대학원에서 정신을 못 차리던 나에게 원어민 선생을 소개해 준 것도, 몸이 녹아 휘청거리던 시기 넓은 대로변 갈빗집으로 나를 불러 몸보신시켜주었던 것도 그녀였다. 그러니까 그녀는 서른 후반에 내가 만난 인생의 인플루언서인 셈. 물론 그녀의 성장과 성취에 나도 손을 내밀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가 리더 내가 팔로워인 셈이라 큰 도움은 못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료하고 지쳐 힐링이 필요할 때 차를 몰고 근거리를 여행하고, 간간이 그녀의 데이트와 대인 관계에도 나름의 코치를 해주었으니 이만하면 좋은 인연인 셈이다. 그런데 적고 보니 내가 받은 게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뭐, 어쨌든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생의 지형이 바뀌었으니 이건 앞으로 내가 살아가며 챙기고 보답할 일일 테지.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나를 위해 왈칵 눈물을 쏟는다. 지난번 우리가 만난 곳이 집이었는지 근처 커피숍이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몇 개월 전 코로나가 한창이던 그날, 모처럼 시간이 맞았던 우리는 계획에도 없던 즉석 만남으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더랬다. 미치도록 꿈꿨던 생의 목표가 확 꺾인 나이에 밀려 코로나와 함께 시절에 쓸려 가고 하고 있던 강의 외에 별다른 성과가 없는 그러니까 딱히 들려줄 얘기가 없던 그런 때였다. 어렵사리 찾은 나의 새로운 꿈이 발발하여 머릿속에서 버둥대며 세미한 노력으로 드러나고는 있었지만 벽돌 한두 장 쌓아 올리는 일이 보기에 그럴듯하지는 않지 않은가. 이미 모든 값을 치러 꿈을 이룬 그녀 앞에서 네 살이나 많은 언니의 애매한 포지션이 그다지 볼 품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을 리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물을 것도 없는 안부를 나누고 그녀의 인사가 이어졌다.
“언니, 요즘 어떻게 지내요?”
나를 보며 언니는 사업을 해야지, 라며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그리던 그녀에게,
“나 요즘 글쓰기 시작했어.”
“글이요?”
“응. 대 작가가 되려는 건 아니고, 글을 좀 써도 될 시기가 온 거 같고 쓰고 싶은 아이템들이 쏟아져서 작업을 좀 해 볼 생각이야.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계속 스케치 중이라 이야기할 거리가 없었잖아. 지금은 구상은 대충 끝났고 이제 하나씩 쓰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지. 근데 생각보다 잘 써져. 그리고 재미있고. 나중에는 출판까지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야.”
내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가 왈칵 울음을 터뜨린다. 원래도 안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 와르르 눈물을 쏟던 사랑 많은 그녀였다. 별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무심히 말하는 내 눈을 보더니 그렁한 눈물을 툭 쏟아내는 그녀 덕에 나도 같이 울컥한다.
“왜 이래, 너? 감동받은 거야?”
“다 왔어 언니. 이제 거의 다 왔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다 왔어 언니......”
무슨 맘으로 그녀는 그렇게 말했을까? 길을 먼저 간 자의 선견(先見)이었을까. 함께 고행한 자의 상련(憐)이었을까. 사랑하는 자의 생에 대한 지심(之心)이었을까. 아마도 삶을 오래도록 보아온 이에게서 나온 그 모든 감정이리라. 그렇게 그녀는 그날의 기쁘고도 서글픈 그러나 희망에 가득 찬 지난 나의 묵은 시간을 휴지로 훔치며 눈물로 함께 해주었다. 무어라 고맙다고 말해야 할지 몰라 농으로 받아친 나였지만 감사를 넘은 그날의 찡한 감동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삶은 계속되고 꿈꾸지 않는 생이 어떤 이에게는 희망 없이 나아가는 길 잃은 배일 지도 모른다. 생의 한가운데 때로 꿈은 미지의 그림자도 목마른 사막 위 아른거리는 형체도 쉬이 내보이지 않기에 좇아가는 이의 여정이 늘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그녀의 눈물은 길을 먼저 간 자의, 길 끝에 다다른 자의, 길을 가려는 자를 본 자의, 길 가는 자를 응원하는 자의 동심(同心) 아니었겠는가. 그러니 이 아련한 꿈의 여정이 길을 가는 이의 아련한 시간이 어찌 눈에 보이지 않았겠는가!
‘다 왔다 언니. 이제 거의 다 왔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언니......’
그녀의 위로와 응원이 온 우주의 함성처럼 들렸다. 그렇게 내 꿈은 누군가의 눈물을 먹고 자랐다. 소리 없는 이슬을 거름 삼아 뿌리를 내리고 대지를 뚫으며 싹을 틔워 연약한 줄기를 뻗었다. 지지의 눈물방울들을 몸 가득 싣고서.
울어줄 자 있는가!
소리 없이 울어주는 꿈의 지지자가 있는가? 삶은 누군가의 희망을 타고 그 선한 가지에서 양분을 흡수해 생의 키를 돋운다. 돋아진 키는 다시 누군가를 위한 눈물이 되고 희망이 되어 잔잔히 요동하리라. 울어줄 자 누구인가. 생의 자락에 깃 선 빛을 드리우며 소리 없는 파장을 일으킬 자 누구인가. 내 희망의 조용한 지지자들을 말없이 떠올려 본다. 그리고 누군가의 꿈을 위해 볼 품 없는 자락 하나 내어주고 있는지 뒤돌아 본다. 남은 날 그런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무심한 날갯짓이 누군가의 잔잔한 호수를 일렁이는 작은 파동이 될 수 있기를. 홀로 쓰는 이 고독한 행위를 통해 더 많은 이들과 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