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더라?

영국 복지센터에 봉사하러 떠난 인간 헤이터 한국인

by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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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를 되찾기 위해 잠시 한국을 떠났다. 물론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가 컸다. 나 또한 생각했다. 너무 감정에 치우친 도전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원체 감정으로 움직이는 종자이지 않은가. 어쩌면 합리적이지 않은 일을 벌이는 건 인간의 특권이 아닐까?


여하튼 한국에 돌아온 지금, 영국살이의 가장 큰 수혜를 이룬 사람이 내가 아니라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사실이 참 재미있다. 친구가 말했다. 너는 모르겠지만 영국에 다녀온 후로 네가 많이 바뀌어 누구보다 기쁘다고, 로봇이 사람의 심장을 달고 돌아왔다고. 그리고 그 친구는 며칠 전 또 이런 말을 했다. 점점 영 티(영국 티)가 벗겨지고 있는 것 같아 위험하다고.


그 말에 나도 같이 위기의식을 느꼈다. '힘들게 회복하고 온 인류애가 고작 4개월 만에 바닥나려고 한다니! 그리고 그게 벌써 밖으로 티가 나기 시작했다니!' 그렇다. 나는 망각의 두려움에 겁이 나 이 글을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봤던 아름다운 세상을 잊지 않기 위해. 사람과의 정서적 교류라는 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기쁜 것인지 기억하기 위해.


내가 죽어 흙이 되어도 영원히 디지털 정보 어딘가에 남아 먼 훗날 나를 닮은 휴먼 헤이터 21호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그렇게까지 멀리 가지 않아도 30대, 40대, 50대에 내가 이 글을 보면 분명히 언젠가 다시 잃어버릴 인류애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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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서류에 쌓여 밤을 새우고 몇 차례의 인터뷰를 거쳐 영국에 왔다. 사람이 싫고 만물이 혐오스럽던 나는 웃기게도 영국의 사회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게 되었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다 못해 이내 염세주의자가 되어버릴 것만 같던 내가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자리에 있게 되기까지, 내 뒤틀린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내가 커버레터와 인터뷰에서 소개한 나는 지금의 나라기보단 나의 바람이자 소망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변하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도 컸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지고 싶은 마음을 내 마음인 척 연기했다. 잃어버린 인류애를 잃어버리지 않은 척 많은 사람을 속였다.


그렇게 거짓말쟁이가 되어 영국 땅을 밟았다. 내 미션은 내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될 때까지 복지센터 직원들을 철저히 속이는 것. 그렇다. 나는 지금 인간 헤이터 주제에 인간 러버로서 위장 취업한 사실을 자백하는 중이다. 이제 와서 고발하려면 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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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과장을 보태서 지난 1년의 소감을 전하자면 다른 차원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깨어있을 땐 절대로 볼 수 없는 저 너머의 다른 차원. 여하튼 영국에서 돌아온 지 4개월, 지난 시간 동안 영국과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지냈던 1년의 삶을 기록하고자 한다.


영국에 있을 당시에는 일상을 인터넷 공간에 기록할 여력이 없었다. 초반에는 생존하기에 급급했고, 적응기를 지난 후에는 현재에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마음이 힘들 땐 종이 일기장에 일기를 썼다. 정말 매일 썼다. 전자기기를 켜고 타이핑을 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내 감정은 이미 종이에 쏟아지고 있었다고 핑계를 대본다. 하지만 일기장에는 길고 정돈된 글을 쓰기 어렵지 않은가. 적어도 내가 쓰는 일기는 그런 성격이다. 같은 단어만 백번 적기도 하고, 글자를 적다가 그림으로 변모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지금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젊음)를 정돈된 덩어리 글로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쓴다. 가능한 한 다시 한국 사회의 피로가 나를 조여 매기 전(전일제 노동자가 되기 전)에 기록을 끝마치자는 바람이다.


철 좋은 감정을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박제하고 싶다면

욕심이 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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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에 여러모로 지친 사람이었다. 성인이 되고 4년의 세월 동안 세상의 변화에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였다. 사실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했던 걸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학원-집 반복하느라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귀를 열 일이 없었다. 반복적인 삶이었지만 그 반복 사이에서 만드는 재미가 얼마나 크던지!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코로나로 인해 등교가 막힌 그 시기에 나는 눈 돌릴 곳이 손 안의 미디어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내가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세상사가 무수히 담겨 있었다. 그때부터 반복되는 매몰과 강박 따위에 사로잡혀 눈을 감지 못하는 시간이 한세월이었다.


등교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듯했으나 이미 지난 3년 동안 내가 손바닥 안에서 보고 들은 세상은 현실 세계에서의 삶 또한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더 이상 핸드폰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눈앞에 펼쳐진, 더럽고 답답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남녀노소 버튼만 누르면 시청할 수 있는 뉴스는 내 상식을 벗어난 채 세상에 즐비한 혐오를 보도하고 있었다. (이토록 정직하고 투명한 매스컴에 시청 연령 제한이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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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궁금했다. 원래 이랬던 세상을 내가 모르고 산 것인가. 아니면 하필 지금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인가. (이건 아직도 답을 구하지 못한 문제다. 누가 대답 좀 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무엇이 사실이든 나는 이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내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니, 애를 낳지 못하는 몸이라는 소식을 들을 때보다 충격적이었다. (그런 소식을 실제로 들은 적은 없지만 만약에 듣게 된다면 비슷한 놀라움일 것 같다.)


어쨌든 간에, 내가 가진 것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걸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변한 것뿐. 고등학생 때의 나를 종종 떠올려 본다. 세상이 아름답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던 내가 왜 이리 병들었는가. 내가 가장 사랑을 했던 그때의 나를 잃는 것이 무서웠다. 그때의 나(사랑)를 되찾고 싶었다. 이 세상을 사는 데에 사랑이 사치가 되어버린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에 나는 아직 젊다. 그러므로 '여전히 내가 가진 것은 변하지 않았다'라는 믿음으로 차근차근 영국에서의 삶을 준비해 나갔다.


21세기하고도 24년이 지난 어느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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