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케이크를 바라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by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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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알고 있을 나의 성격 중 하나는 치즈 케이크를 정말 싫어한다는 것이다. 치즈를 싫어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치즈라는 원물은 좋아하지만 이로 만든 '치즈 케이크'가 싫은 것이다. 번외로는 배스킨라빈스의 뉴욕 치즈 케이크가 있다. 예시를 하나 더 들자면, 고구마는 좋아하지만 고구마 무스는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고구마피자를 시켰는데 고구마무스 피자가 나온다면 식탁을 엎어도 된다.)


치즈 케이크에 관한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친한 친구가 치즈 케이크를 무려 4인홀 케이크로 사 오는 바람에 내게 미움을 산 적이 있다. 그 녀석은 치즈 케이크를 가장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내가 치즈 케이크를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을 그만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적당히 생크림 케이크나 초콜릿 케이크를 살 수도 있었는데 하필이면 치즈 케이크를 사 오다니! 그것도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이유로! 나는 그 친구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그런 대참사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이 글을 읽으며 호탕하게 웃고 있을 거다. J.E. 보고 있나?


하지만 오늘, 치즈 케이크를 보고 입맛이 돋아버리는 이상 사태가 갑자기 발생하고야 말았다. 나는 생각했다. '아, 내 인생에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이 이렇게 불쑥 찾아오다니!' 어쩌면 오늘 나의 입맛에 지변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짐작했다. 그리고 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치즈 케이크 한 조각에 4,800원을 투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내가 이런 기행을 저지른 것은 호르몬에 의한 감정 기복 따위가 아니었다. 철저히 데이터에 의한 결과였는데, 사실 나는 이러한 지변을 겪은 적이 이미 한 번 있다.


빙수 위에 올라가는 큐브 치즈를 아는가? 나는 이 '큐브 치즈' 또한 치즈로 취급하지 않았다. 얼마나 싫어했는지 설명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J.E. 를 또다시 불러와야 한다. (지금 보니 J.E. 와 음식으로 갈등을 빚은 적이 왜 이리도 많을까) 우리는 한국의 유명한 빙수 가게에서 망고 빙수를 시키려고 하는 중에 있었다. 그런데 '망고 빙수'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고 웬걸 '망고 치즈 빙수'만이 선택지에 놓여있는 게 아닌가!


이게 내게 어떤 기분으로 다가왔냐면, 밀크티를 마시고 싶어서 카페를 찾았는데 밀크티는 주문할 수 없고 오직 버블 밀크티만 주문이 가능한 상황을 맞닥뜨린 것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더운 여름을 가시게 해 줄 망고 빙수를 먹기 위해 '치즈 큐브 토핑'을 과연 감당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때 주문을 기다리던 빙수 가게 직원이 우리에게 말했다. "치즈 큐브를 따로 빼서 담아드릴까요?" 과연, 어른이었다.


위 일화를 읽으면서 왜 진작에 저 생각을 못 했는가 타박하고 싶다면 미리 이야기한다. 나는 그때 불과 인생 13년 차에 있었다. 카페에서 버블 밀크티를 주문하면서 버블을 따로 빼달라는 생각을 하긴 아무래도 힘들지 않은가? 그것과 비슷했다고 봐주면 감사하겠다. 지금까지 치즈 큐브에 대한 서론이 상당히 길었는데,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지금 치즈 큐브를 상당히 좋아한다. 치즈 큐브가 없으면 망고 빙수를 입에 한 입 넣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내 입맛이 바뀐 것은 내가 20대에 접어든 이후였다. 중학생의 나는 지금처럼 치즈 큐브를 좋아하게 될 거라 감히 예상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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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치즈 케이크를 구매한 나는 그 소비에 만족했는지 묻는다면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긴장 속에서 치즈 케이크를 한 입 넣었을 때 나는 꽤 놀랐다. 일단 첫 입을 먹었을 때의 감상은 내가 기억하던 치즈 케이크의 끔찍함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입안을 감쌌고,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는 아이디어마저 샘솟았다. 하지만 몇 입을 먹고 난 후 나는 믿을 수 없는 느끼함과 매스꺼움에 더 이상 포크를 들 수 없었다. 치즈 케이크를 먹은 후 급격하게 떨어진 나의 컨디션도 한몫했다.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치즈 케이크를 싫어하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첫 입의 치즈 케이크에서 나는 가능성을 보았다. '어쩌면 나, 치즈 케이크를 좋아하게 될 수도! (그게 지금은 아닐지라도)' 고작 한 조각의 치즈 케이크조차 다 먹지 못하고 끝나버린 도전이었지만 치즈 케이크를 먹으며 맛있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음에 감사하다. 그래, 그 누구도 치즈 케이크를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협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치즈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이 사안을 진중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후 베트남에 가서도 '콤 자우 트엄(고수 빼주세요.)'을 외워갈 정도로 고수는 나에게 기피 대상이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 고수가 빠지면 어딘가 굉장히 허전한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이국 음식을 먹을 때, 심지어는 부대찌개를 먹을 때마저 고수 없이는 도저히 미식을 즐길 수가 없는 입맛을 가지게 되었다면 믿을 수 있는가.


고수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누구도 내게 억지로 고수를 먹이지 않는다. 나는 베트남에 살지도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전에는 기겁하던 대상을 더 이상 혐오하지 않는다는 게 놀라운 것이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그때는 싫었고, 지금은 좋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랑의 공식이 그렇지 않은가? 이상하고 밉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없으면 허전하고 자꾸만 눈길이 가게 되는 것.


이렇게 입맛에 큰 변화가 생길 때마다 내가 자라고 있음을 몸소 느낀다.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내가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놀랍다. 이는 내게 경이로운 기쁨이다. 나는 싫어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이지만, 그것들을 언젠가 무지하게 좋아하게 될 미래를 기대하며! 어제가 될 오늘을 또 살아간다. 먼 훗날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는 치즈 케이크를 바라보듯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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