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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덕 Mar 18. 2021

앤트 제미마의 해방



앤트 제미마가 드디어 미국 슈퍼마켓 가판대에서 해방된다. 펩시콜라 계열의 팬케익 믹스 브랜드 앤트 제미마. 132년 동안 존재했으나 한 번도 실재하지 않았던 그의 얼굴과 이름이 올해 6월부터 완전히 사라진다. 펩시코사는 2020년 5월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번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를 계기로 앤트 제미마의 이름과 이미지 모두 바꾸기로 했다. 얼굴을 브랜드화 한 많은 상품 가운데 왜 앤트 제미마는 로고를 바꾸어야 했을까?

1830년대 초 미 북동 부주에 민스트럴 쇼가 등장한다. 아프리카 혈통의 사람들을 묘사한 코믹 촌극으로 1910년까지 유행한 예술형식이다. 멍청하고 게으르며 행복한 어릿광대 같은 모습의 흑인을 보여준다. 백인 남성들이 검은 얼굴(Blackface)로 분장하고 공연했다. 극 중 등장하는 흑인 유모가 제미마 아줌마다. 자신의 자녀는 소홀히 한 채 백인 주인의 자녀를 열심히 양육하는 순종적인 하녀 이미지다. 1889년 크리스 러트와 찰스 언더우드라는 두 백인 남성이 제분회사를 차리면서 제미마 아줌마를 브랜드 이미지로 채택했다. 

앤트 제미마 로고의 인종 차별적 요소는 꾸준히 비판받아왔다. 노예제에서 벗어나고도 하녀의 삶을 살아야 했던 아픈 역사를 떠올리는 것이 문제였을까? 그보다 더 중요한 지점은 분장한 블랙페이스 안에 숨어 있는 백인의 얼굴이다. '그렇게 해도 되는' 백인의 권력. 

검게 칠한 블랙페이스의 사회적 의미가 인종 차별로 함의되어 자취를 감춘 후에도 차별을 가시화하는 사회의 민낯은 시시 때때로 드러난다. 특별히 지난 5년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공공연하게 차별과 혐오가 전염되는 시간이었다. 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가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막을 수 없다고 해서 타인종을 조롱할 권리, 성적 지향이 다른 이들을 비하할 권리, 장애인의 이동권을 막을 권리, 약자를 때릴 권리, 여성의 몸을 성 상품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렇게 해도 괜찮은 사회 권력이 있을 뿐이다. 

사회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차별은 광범위하기도 하거니와 기준의 모호성 때문에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차별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차별을 구분하고 이겨내는 일은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 차별은 우월감에서 시작한다. 내 안의 우월감을 들여다보는 일은 본인만이 할 수 있다. 차별을 끝내는 일도 그 망할 놈의 우월감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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