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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덕 Feb 04. 2022

그리스 신화와 이기적 유전자

내 맘대로 책 읽기 1. 인간은 왜 이렇게 후질까?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신화>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같이 읽고 있다. 두 책 사이에는 신화와 과학이라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어 보이지만 실은 같은 얘기를 들려준다. 두 이야기 모두 "인간은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에 대한 긴 설명서다. 멋지고 훌륭한 사람으로 살 수는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후질까에 대한 고민은 지금이나 삼천 년 전이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리스 신화는 전쟁사다. 땅을 뺏고 권력을 쟁취하고 전리품을 챙기고, 뺏긴 자손들은 복수한다며 다시 땅을 뺏고 권력과 전리품을 되찾아오는 반복이 끝없이 되풀이된다. 전리품의 으뜸은 예쁜 여자다. 예쁜 여자는 전리품이자 싸움의 트리거로서 활약된다. (전리품으로서의 여성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므로 조용히 넘어간다.) 전면에 드러나진 않지만 이야기 전체에 등장하는 건 왕권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희생되어 죽어가는 이름 없는 병사들이다. 그들의 비참함을 당시 사람들이라고 몰랐었을 리 없으니, 대체 인간은 왜 수많은 생명을 제물로 삼으면서까지 욕망을 채우려 들까를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그 답을 고대인들은 남 탓으로 돌린다. 인간을 만들어낸 신이 태초부터 욕망과 질투가 강한 존재라서 그 신을 닮은 사람도 그리 될 수밖에 없노라고. 고대인들은 그렇게 핑계를 대며 인간 모습 그대로 욕망과 질투 가득한 신을 창조하고 박제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론을 재해석하고 있다. 기존의 우세 이론은 생물이 종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도록 진화하기 때문에, 종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인 개체가 많을수록 그 종은 절멸의 기회를 피해 간다고 보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생각은 달랐다. 사자와 영양은 같은 포유강의 일원인데 사자는 포유동물의 보존을 위해 영양 사냥을 멈출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기존 이론의 허구성을 설명한다. 그보다는 집단 내의 이타적인 개체가 희생하고 있는 동안에 이기적인 개체들이 살아남아 재빨리 자손을 널리 퍼트리는 패턴으로 유전자가 진화해왔다고 보았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타성은 나쁘고 이기성이 좋은 것이므로 유전자는 자연스럽게 좋은 것, 즉 이기적인 것을 따라 진화해왔다. 인간이 쉽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살아남기 위한 유전자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이쯤 되면 "저 인간은 대체 왜 저래?"라는 말의 무의미함이 실감된다. 인간의 의지로 악을 넘어가기엔 유전자의 힘이 너무 센 까닭이다. 인간이 타인을 짓밟고 타종을 거리낌 없이 잡아먹으면서도 훌륭한 체하는 모든 것들은 내 탓이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 탓인 거다. (이 책은 도덕이나 교육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인간은 후지다. 라캉의 시선대로 지극히 숭고한 존재인 안티고네 같은 이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는 극소수이며 이 숭고한 인간은 도킨스 이론대로 자손을 번식하지 못했음을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본다. 통탄스럽지만 나약한 나 자신에게는 위로가 되고, 원망스럽지만 타인에 대해서는 관대해질 수 있는 지점을 부여한다. 

까뮈는 인간사에 이유 없는 악이 존재하는 부조리를 삶의 무의미성으로 보았지만, 만약 그가 살아서 도킨스의 이론을 읽었더라면 어떤 글을 남겼을까 궁금해진다. 이제 윤리 도덕과 교육의 문제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숙제로 남는다. 내 안에 내재한 유전자의 힘을 이기고 영하 10도인 지금 인류 멸종을 피하기 위해 히터를 끌 용기가 있는가가 나의 숙제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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