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나이 칠십에 내가 태어났다. 직장을 나가야 했던 내 엄마를 대신해 칠순의 노인이 아기를 키웠다. 낮잠을 자면 소가 되는 줄로 믿었던 어린 시절, 할머니는 나의 거의 모든 세계였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 꽃밭을 만들어 꽃과 푸성귀를 키우는 일이나, 쓰고 남은 헝겊 조각을 이어 붙여 장식용 상보를 만드는 감각 같은 것들을 할머니는 가르치고 나는 배웠다. 식구들이 떠난 자리, 담장 안의 적막함을 노인과 소녀는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채워갔다.
어느 아침나절, 할머니가 갑자기 새 한복을 꺼내 입고 양산을 펼쳐 들었다. 돌연한 상황에 가족들은 긴장하지만 양산을 받쳐 든 할머니는 고집스러운 뒤태를 남기고 대문을 나선다. 가는 길의 향방도 알리지 않고, 돌아올 기약도 없이 휑~허니 떠나는 할머니를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조그만 체구에 말이 없던 노인의 위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저녁 무렵 네 명의 이모들 중 한 명에게서 전화가 오면 그때서야 식구들은 안심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울기 시작했는데, 혼자 남겨진 설움 같은 것이 복받쳐서였다. 반드시 돌아올 거라는 걸 알지만 혼자 담장 밖 별나라로 떠나버린 할머니를 두고두고 원망하며 잠들던 시간이었다.
할머니가 여행했던 별나라는 어디였을까. 무엇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한 걸까.
몇 번의 두려움과 몇 번의 낭패 끝에 버스에 올라탄 할머니가 느꼈을 희열이라면 답이 될까. 긴 시간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의 생경함이 신선했을까? 내릴 곳을 놓치지 않으려는 긴장감에 두근거리는 심장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던 걸까? 마침내 목적지에 내린 할머니의 여행은 이미 거기서 끝나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 그랬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할머니 외출의 하이라이트가 버스여행이었을 거라고 짐작하는 이유는, 고국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 느끼는 내 감정이 그랬기 때문이다. 이름을 잊고 젊음도 잊고 꿈도 잊어야 살아졌던 시간. 타향의 새로운 문화 속에서 쩔쩔매며 세 아이를 키우던 어느 날, 갑자기 표를 끊고 홀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나면 내 숨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동안도 쉬지 않았을 들숨과 날숨이 홀연히 나를 불렀다. 그때서야 나는, 살아있구나라고 조용히 되뇐다.
할머니를 다시 만날 날이 언제가 될까. 정말로 내게 홀로 외딴곳을 서성이게 만드는 것까지 대물림해 준 건지 물어봐야겠는데 만날 수 있을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의 외할머니 대신 이 세상 모든 할머니들에게 물을 작정이다. 가슴에 돌 같은 게 쌓여 있진 않느냐고. 몸 어딘가 구멍이 숭숭 나서 그리로 바람이 지나가지는 않더냐고. 잘라내고 감추고 모른 척한 내 감정들이 불쌍해서 혼자 운 적은 없었느냐고. 어쩌면 그 질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바람이 멈추고 돌탑이 높아가는 걸 멈출지도 모르니까.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할머니, 할머니도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