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털터리 남편에게 시집와 준 아내를 위해 부자가 될 결심을 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외각에서 살던 우리 부부가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며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당시 경기도 양주에서 7천만 원에 24평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었는데(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저렴하다)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서 부동산을 3군데 정도 돌면서 집을 찾게 되었다.
물가 개념에 대한 인식이나 서울 집값을 잘 모르던 때라 "7천만 원이면 그래도 구하지 않을까? 만약 부족하면 대출을 3천 정도는 받을 수 있으니.. 1 억정도면 살만한 공간을 마련할 거야"라는 기대감(지금 생각하면 세상모르는 시절이었다)을 가지고 부동산의 문을 열었으나 돌아오는 말들을 현실 그 자체였다.
신혼부부가 집을 보러 온 것에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던 사장님도 7천만 원이라는 말을 듣자 "요즘 서울에 7천만 원 집이 어디 있어요."라고 하며 손사래를 치셨다. 몇몇의 친절한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 지리도 모르는 서울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반지하방, 원룸, 다세대골목주택 등을 보러 다녔다. 겨울에 집을 보러 다녔는데 길도 모르겠고 또 왜 이리 추운지 꽁꽁 언 얼굴로 부동산 사장님의 등만 보며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렇게 따라간 곳에는 곰팡이가 너무 펴서 들어가자마자 기침이 나오는 지하방, 가로등이 없는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다세대 주택들이었고 아무 말 못 하고 서있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어깨가 작아졌는지 모른다.
그 당시 기억을 소환하며 직접 그린 그림(개인적으로 토끼를 매우 좋아한다)
발품을 팔고 또 팔아서 봉천동에 5층짜리 구축 아파트를 반전세로 계약했다. 9천에 월 15만 원을 납입하는 조건이었다. 정말 오래된 아파트라 거실 전기가 110v였는데 변압기를 사서 연결했다. 지하철역에서 15분이라는 부동산 사장님의 설명은 전력으로 달려야 가능한 거리였고 그마저도 올라오는 길은 정말 거의 산행 같았다.
(봉천동 고갯길에 눈이 오면 차가 못 내려올 정도다. 체감상 각도가 60~70은 되는듯했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생활을 시작했다는 고양감은 우리 두 부부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수저론 계급으로는 흙수저도 겨우 해당되는(이 얘기는 추후 다룰 예정이다) 남편을 만나 고생이 많은 아내는 늘 긍정적이고 밝아서 그 높은 언덕을 올라갈 때도 불평하지 않았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면 덜 힘들어 오빠", "내려갈 땐 살짝 뒷걸음질로 가면 다리가 덜 아파" 지금 생각해 보면 웃픈 이야기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부자가 될 결심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부동산 투자는 투기다. 집 값은 떨어질 거고 주식투자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돈은 그저 노년에 생활할 만큼만 있으면 된다라고 하며 지금의 삶이
중요하고 미래를 위한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너무 욕심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은 마치 여우의 신포도 같은 건데 경제적으로 너무 열약하게 살아왔던 내 성장배경으로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면 편해. 꿈꾸지 않으면 잃지 않아라는 마음으로 평범하게 살면 되는 거야. 가난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큰 사치는 부리지 않으나 재테크나 투자는 다른 세상 이야기로 생각하며 결혼생활을 한 지 4~5년이 지나게 되었다. 문득 돌아보니 그렇게 맞벌이로 일을 했는데(소득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처음이 너무 작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자산의 증가속도는 매우 더뎠다(중간에 이사하며 증액된 전세대출을 갚고 있었다).
그렇게 잘 될 거야라는 현실성 없는 희망회로 속에서 살던 2019년 연말에 큰 사건을 만나게 된다(우리 부부는 이것을 아리에티사건이라 한다). 행복주택의 재계약 신청기간을 놓치게 되어 집을 새로 구해야 하는 위기를 만나게 된 것이다(추후 살펴보니 구제가 가능했으나 이미 마음은 갑자기 집을 떠나야 하는 아리에티의 슬픔이었다).
큰 욕심 없이 소소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는 모토로 살던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이 사건은 지금까지 여우의 신포도로 생각했던 부자가 되고 싶고 투자하는 것은 욕심이라는 나의 가치관을 뒤 흔들게 된다.
나의 "가난하지만 않으면 돼"라는 인생 방향이 역설적이게도 평생 가난의 경계에 서있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진 건 쥐뿔도 없는데 꿈만 많은 남편하나 믿고 시집온 내 아내가 평생토록 지금 수준으로 살게 하겠다는 공포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각성이 시작되었다. 전세 -> 반전세 -> 행복주택의 순서로 3번을 이사하는 동안 자본시장에서 돈을 내기만 하는 사람으로 살던 우리는 처음으로 집을 살 생각을 하게 되었고 3개월 정도의 딥 다이브(부동산, 실거주 1 주택, 부동산 방문 등)를 통해 21년 1월 서울 외각에 있는 역세권 20평대 아파트를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파트 시세가 지속적으로 오르며 경제적 부를 축척하게 되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내고 싶지만, 여러분들이 모두 아시는 대로 21년은 부동산 시장이 불장중에 불장이 었고 패닉바잉으로 집 값이 아래턱까지 올라와있던 시점이었으나 부동산 관련 경험이나 공부가 짦았던 우리는 부동산 순환시기나 고평가 되고 있던 시기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당시 우리 입장에서는 집값은 늘 비쌌고 서울에서 집을 사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21년 1월 서울특별시의 아파트 소유자가 되었다(나는 이것을 빛 좋은 개살구 1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다행히 3개월간의 공부 중에 대출, 입지분석은 남은 게 있어서 낮은 금리 상품을 선택하는 방법과 그 당시 고민했던 아파트 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긴 했었다(가격방어, 신고가 비교 등). 물론 이것은 그 당시 구입리스트 아파트들 중인 것이고 지금 생각한다면 아쉬운 투자인 것은 확실히다.
다만, 집값이 떨어지고 영끌족들의 곡소리를 매스컴이 비웃고 있는 이 시점에도 낮은 주담대 이자로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어 큰 걱정은 없이 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오히려 집을 사고 난 뒤에는 자본소득, 경제상황, 재테크에 큰 관심이 생겼고 21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인 시간을 투여하며 부자가 되기 위한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패가망신의 지름길인 주식을 투자하고 있고 투기꾼들의 욕심인 부동산 투자를 위해 매물리스트를 점검하며 임장을 다니고 있다. 아직까지는 무엇을 크게 이룬 것은 없으나 확실한 것은 부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는 것이다.
부자를 정의함에 있어 얼마 이상의 자산, 한국의 상위 몇%로 명명할 수 있으나 나에게 있어 부자란 가난의 경계를 넘어 아내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금적전 자유를 이루는
것이다. 노후보장, 좋은 주거환경, 자유로운 문화생활(우리 부부는 여행을 좋아한다),
사람들과의 파티(우리 부부는 사람도 좋아한다)를 편안하고 걱정 없이 이루기 위해서 부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그런 노력의 시간들을 정리하는 곳이다. 시점상으로 이미 진행된 시점,
진행할 시점, 투자이야기, 개인적 이야기 등 다양하게 이루어지겠으나 목적은 하나로 이어진다.
흙수저 김토끼 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금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