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 신혼부부 1년차에 쉼표를 만나다

직면

by 노드

사실 종양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날

나는 그것이 내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세 명의 의사가 같은 말을 했는데도,

'다들 오진일지도 몰라'라는 희망 섞인 부정을 놓지 못했다.


진단을 받고 병원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나는 여전히 마음속에서 그 말을 밀어내고 있었다.

"설마 진짜일까?"

"그냥 지나가는 증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마음속 가득했던 물음표들이 서서히 마침표로 바뀌기 시작했다.

우울한 마음속에 갇혀 지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종양'이라는 놈과 마주하기로 했다.


우선 '뇌종양'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검색을 누르기까지 몇 분을 망설였는지도 모른다.


글자를 입력하고 검색을 하는 순간

화면에 나오는 연관 검색어들


‘양성’, ‘수술’, ‘전신마취’, ‘뇌압’, ‘기억력 저하’


어떤 문장은 위협적으로 느껴졌고,

어떤 문장은 오히려 구체적이라 안심이 되기도 했다.


뇌의 어디에 생겼는지에 따라 증상이 달라지고

수술 후 회복까지 걸리는 시간도 각기 다르다는 걸

하나하나 읽어가며 알게 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이건 내가 알아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는

의학 정보뿐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SNS, 블로그, 커뮤니티.

‘뇌종양 환우 모임’이라는 카페에도 가입했다.

회원 가입을 하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쓰는 데에도

마음속에선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정말 이런 곳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줄이야…'


하지만 그곳엔 나보다 어린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도 있었고,

이미 수술 후 잘 회복해

여전히 회사도 다니고 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글을 읽고 있자니

내가 겪고 있는 이 두려움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사실이

조금씩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용기’는 괜찮다고 믿는 게 아니라

괜찮지 않은 걸 인정하면서도

그걸 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힘이라는 걸.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생각이었다.


누군가가 쓴 한 줄의 글이 내 마음을 살짝 움직였고,

댓글 하나에도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나의 사연과 고민도 작성해서 글을 올렸다.

위로와 공감의 댓글이 달렸고

또한 검진상황, 대학병원 접수 등 그 과정을

솔직하게 물어보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본인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 친척들이 환자일 수 있고

그들의 보호자로서 그 과정이 정말 궁금했지만

물어보고 알아보기 어려운 분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불안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직면’이라는 단어는 거창하지 않았다.

단지 원인을 알아보고 질문을 하는 것,

조용히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

그리고 나도 마음속의 문을 조금 여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아주 작은 것들이 다시 살아 있는 듯 보였고

나는 피하고 싶던 것들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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