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3일 동안의 긴장을 등에 지고
마침내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아침 공기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분당서울대병원으로 가는 길.
차 안에는 음악도 없고 대화도 없었다.
오늘만큼은 운전을 하고 싶지 않아 아내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나는 조수석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심코 지나치던 건물과 가로수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마친 뒤, 대기실에 앉았다.
생전 처음 가본 큰 병원이었다.
접수부터 진료 대기까지 모든 게 낯설었고
그 긴장감 속에서 작은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한참을 기다렸을까.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아내와 함께 진료실로 향했고, 문을 여는 순간 심장이 두근두근 소리를 냈다.
의자에 앉자마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심호흡을 했다.
MRI 사진이 모니터에 떠 있었고,
의사 선생님은 마우스로 그 안의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 보시면, 이 부분에 종양이 보입니다."
"다행히도, 현재로서는 악성의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확실한 판단을 위해선 몇 가지 추가 검사가 필요합니다. 수술 여부도 포함해서요."
단어 하나하나가 정확했지만, 마음엔 쿵 하고 울렸다.
'악성은 아닐 것 같다'는 말에서 안도의 숨이 나왔고,
'확실하진 않다'는 말에 다시 숨이 들어찼다.
옆을 보니 아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표정은 밝아졌지만, 그 눈빛엔 여전히 불안이 남아 있었다.
그 눈빛이 괜히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렇게 진료실을 나왔고 병원 건물을 벗어났다.
햇빛이 있었지만 따뜻하진 않았다.
그제야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짧고 조용한 눈빛.
처음으로 서로 숨을 깊이 내쉴 수 있었다.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던 중 잠시 카페에 들렀다.
평일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컵을 감싸 쥐며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와이프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각자의 속도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커피가 식을 때쯤,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나쁘지 않은 날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곧 '우린 아직 같이 있다는 뜻' 같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조금씩 대화가 생겼다.
"추가 검사는 며칠 뒤쯤 잡히겠지?"
"응, 선생님 말투 보니까… 급하게 걱정할 건 아닌 것 같아."
집에 도착해 소파에 앉았다.
긴장이 풀렸는지 피곤함이 급격하게 몰려왔다.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진단을 받은 날.
그건 끝이 아니었다.
시작도 아니었다.
그저, 긴 터널 속에서
잠시 마주한 조용한 공간 같았다.
나는 이제 막 내 병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일련의 과정이
'끝'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한 구간으로 바라보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다시 살아가는 일'이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