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중요한 변화의 시작
나만의 세상이 무너졌던 지난 시간들
하지만 진단을 마주하고 나니
세상이 갑자기 달라진 건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은 지극히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루하루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음속 어딘가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예전에는 시간을 쪼개 써야 직성이 풀렸다.
쉬는 시간에도 뭔가를 배워야 했고,
빈틈이 생기면 채워야 하루를
‘제대로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쉬고 있는 시간은 나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지고 있었다.
출근 전 들른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을 때,
처음으로 ‘오늘 커피 맛이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을 느꼈다는 사실보다,
그 ‘괜찮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지친 몸과 피로를 풀기 위해
그리고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매일 약처럼 먹었던 카페인이 아니었다.
정말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은 맛도, 공기조차도
그저 배경처럼 스쳐 지나갔는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회사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유리창 너머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수십 번 지나쳤던 건물, 바쁜 출근길, 흐릿한 하늘.
그게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내가 지금, 나를 다시 느끼고 있는 건가?”
그날 밤, 산책을 나섰다.
강아지는 여전히 코를 킁킁대며 걷고,
아내는 내 옆에서 조용히 발을 맞췄다.
아무 말 없이 걷는 그 시간이 어쩐지 좋았다.
“오늘은 좀 괜찮은 것 같아.”
내가 먼저 말했다.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그 말에 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폰을 켜고 메모장을 열었다.
그리고 한 줄을 적었다.
오늘 커피가 괜찮았다.
바람도, 걷는 속도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 한 줄이 거창한 다짐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괜찮아질 수 있다’는 마음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변화는 그렇게,
크고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하루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