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가 게으른 완벽주의에게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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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제나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절로 느껴지는 것도 있다.
자서전에 적히거나
어느 기사 한 줄에 실리거나
하다못해 내 경력서에 한 줄 적을 수 있는
그런 대단하고 빛나는 업적이 아니더라도
뭔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꾸준한 사람은,
나만 아는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하여
타인들이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큰 발걸음을 결국에는 걸어내더라.
우리 인생은 빠르지만, 꾸준히만 하면 어느 분야의 장인이 될 수 있을 만큼 기니까.
나는 소위 말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이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려다 보니
시작이 어렵다.
내가 해내려는 게 나를 너무 거대하게 눌러 덮는 것만 같아
그 무게감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지 못할 때가 참 많았다.
그렇게 시도하지 못하고 흘러 보낸 약 30년의 시간
그저 작고 초라한 한 줄만 알고 소중히 여길 줄 몰랐던 나의 빛나는 시간들
나는 그 시간의 가치를 첫째를 낳고 깨달았다.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에게 매여 집에서 나가지 못하니
내가 집 밖에서 해낼 수 있었던 일들만 떠올랐다.
무력했다.
아이가 크면서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쉬웠다.
그래서 첫째 때와 똑같이 아이에게 매여있는
갓난쟁이 둘째를 키우는 내가 말한다.
"어차피 해야 하는 육아니까. 나, 이걸로 뭐라도 해보려고."
사람들은 되묻는다.
"그래서 그걸로 뭘 할 건데?"
나는 대답한다.
"글쎄? 우선 해보려고. 뭐라도 해본 이 경험이 모여 경력이 되고 경력은 기회가 되니까."
"지금 내가 만드는 건 결과가 아니라 기회야."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내 능력이 초라해 보일지라도
내가 하는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얼마나 대단한 일이 될지 기대해 보라고.
지금 이 글을 읽는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육아를 끝내고 자리에 누우면, 내 하루는 쓸모를 다한 비닐봉지처럼 나뒹굴고 있지만
그 하루를 다시 조각조각 맞춰보면
나에게 일상인 육아, 집안일이 누군가에겐 작품이 되기도 하고
잘 살펴보면 있는 육아 사이 찰나의 시간 동안
내가 꺼내보지 못한 빛나는 꿈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고.
뭐라도,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