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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우 Jun 23. 2022

80년대가 우리에게 남긴 것

영화 탑건: 매버릭(2022)

현재 영화계, 특히 할리우드에선 80, 90, 00년대 성공했던 시리즈들의 리메이크, 리부트, 속편 제작이 성행하고 있다. 기억나는대로 나열해 봐도 캐리비안의 해적, 고스트버스터즈, 쥬라기 공원, 맨 인 블랙, 해리포터 시리즈, 트랜스포머, 다이하드, 스타워즈 등의 시리즈들이 있다. 당시 개성넘치고 오리지널리티가 강했던 시리즈들이 21세기에 재창작이 되면서 실망감만 안겨주고 있다. 원작의 명성에 가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뿐더러,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낳으며 팬들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는 와중에, 팬데믹이 끝나고 극장의 부활을 알리는, 축포를 터뜨릴만한 괴물같은 작품이 등장했다. 톰 크루즈. 그 이름만으로 할리우드를 대표할 수 있는 진행형 노력파이자 완벽주의자인 이 스타는 30년이 넘은 시리즈를 다시 들고 나타나 예상치 못한 기쁨을 선사했다. 80년대의 정신이라 불리우는 1편을 이제와 다시금 부활시킨,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탑건:매버릭'이 22일 개봉했다. 개인적 견해로, 이변이 없는 한 이 영화는 올해 개봉한 영화중 최고의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필자는 '탑건'의 팬은 아닐 뿐더러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팬임을 자처하면서도 탑건을 보기는 계속 꺼려했었다. 톰 크루즈가 날개를 단 작품이기는 하지만 2022년을 살아가는 사람의 시각에선 어느 정도 진부함이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쌍팔년도 감성이라 하지 않나. 하지만 영화의 수록곡 Take my breath away는 즐겨 들었다. 그때의 낭만은 이 노래만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2018, 19년에 촬영하고 팬데믹이 끝나갈 무렵 본 영화의 평이 하나 둘씩 공개될 무렵 난 동시에 흥분했다. 심상치 않았다. 톰 크루즈 커리어 최고의 작품이며 1편을 뛰어넘고,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의미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완벽한 부활을 알린다는 매체들의 극찬이 쏟아졌다. 필자는 아침에 탑건을 시청하고 오후에 프리미어 상영으로 관람했다. 올해 들어 실망스러운 심정으로 영화관을 나서기만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맞다. 이 영화는 톰 크루즈 커리어 최고작이라는 칭호가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감상하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깔끔하다는 점이었다. 스토리와 플롯, 캐릭터 구성, 감정선 모든 것이 과하지도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않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전편의 음악과 전반적인 구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본작은 스스로 독립하기를 자처한다. 전편의 향수에 기대어 읍소하는 여타의 시리즈들과 달리 '탑건:매버릭'은 본작 자체로 우뚝 솟아있다. 의외로 가장 놀라웠던 점은 톰 크루즈 자체에 있었다. 이상하게 '탑건:매버릭'에서 36년만에 다시 찾은 캐릭터에선 성급하게 포장된 억지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30년의 세월이 지난 피터 미첼이 있었다. 톰 크루즈의 연기는 애처로우면서 담대했다. 감정에 호소하지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의 눈엔 세월이 있었다. 피터 미첼이 있었고, 매버릭이 있었고, 톰 크루즈가 있었다. 말문이 막혀 허공을 헤매던 그의 눈동자에선 오롯이 진심만이 있었다. 사실 연기를 보기 위해서 찾는 배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놀라웠던 것일까.




‘탑건:매버릭’을 감상하고 떠오른 작품들이 있다. '로건'과 '매드맥스:분노의 도로'가 그것들인데, '로건'에선 본인과 함께 늙어가고 살아온 휴 잭맨의 캐릭터 울버린에게 완연한 마무리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에선 수십년전의 시리즈를 가져와 완벽하게 재창조시켰다는 점에서 '탑건:매버릭'과 연결지을 수 있다. 사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와 '탑건:매버릭'은 할리우드의 정도를 따른다. 스토리는 전형성을 띄며 음악은 완벽하게 할리우드스럽다. 하지만 정직한 직구는 항상 먹히는 법이다. 영상에서 펼쳐지는 공중전은 물론이고, 캐릭터간의 드라마는 인간적이다. 귀여운 장면들도 존재하고, 전형적이지만 꽉찬 서스펜스도 공존한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탑건:매버릭'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상업영화, 양산형 블록버스터가 이루어낼 수 있는 정점에 올랐다.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서서히 모습을 감추던 제리 브룩하이머가 다시금 힘을 되찾은 덕인가. 매우 할리우드스럽다. 동시에 매우 만족스럽다. 필자는 '잘 만든 할리우드 영화'에 목이 말랐었다. 다행히도, 이들은 아직 극장의 힘을 믿고, 영화적 경험을 어떻게 구현해내야 하는지에 열중한다.



'탑건:매버릭'은 전편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필자는 1편을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일단 몰입의 정도가 달라진다. 극중 브래들리와 피터 사이의 이야기에 충분히 이입할 수 있으며 공중전을 구현하는 기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피부로 체감할 수 있다. 그 자체로 '탑건:매버릭'은 넋이 나갈정도로 현장감이 넘쳐난다. 또한 무엇보다도, '탑건:매버릭'이 놓지않고 다시 가져온 80년대의 감성이 무엇인지 느껴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뻔하다. 스스로만 생각하던 인물들이 굉장한 모험을 지나오면서 서로를 다시 확인하고 인정하며 성장하는 전개나, 영화 내내 못 죽여서 안달나던 상사의 인정이라던가, 화보처럼 촬영된 베드신, 마지막엔 석양을 바라보며 비행하는 뒷모습. 좀 감상적인 요소들이지만, 사실 필자는 이 감성들이 요즘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80년대는 우리에게 낭만을 선사했다. 자를 갖다 대면서 무엇이 이득이고 실인지 계산하고, 서로보단 스스로만을 생각하기에 바쁜 차가운 사회의 분위기에 유대와 정서의 힘은 실로 중요하다. 현실을 뛰어넘는 그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고 우리 눈앞의 대립과 분열을 막아내는 것이다. 톰 크루즈는 그것이 영화라 생각했고, 그래서 탑건을 다시 들고온 것일 테다.






80,90년대에 기생하며 별 볼일 없는 영화들이 쏟아져내리는 가운데 장인 정신으로 올곧게 만들어낸 '탑건:매버릭'은 영화팬들에게 다시금 영화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커리어의 황혼기를 앞둔 톰 크루즈는 왜 하필 탑건을 다시 불러오려 했을까? 톰 크루즈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답이 궁금하다면 조속히 극장을 찾기를 바란다. 톰 크루즈가 이 세상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때가 오면, 이 영화로 그를 기억해도 좋을 것 같다. 그를 둘러싼 가십들은 일단 뒤에 두자. 그는 항상 관객을 생각하고, 영화를 생각한다. '탑건:매버릭'은 실로 값진 결과물이다. 평단과 골수팬, 대중을 모두 사로잡는 것은 쉬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탑건:매버릭'으로 그는 다시금 증명해냈다. 그는 엘리트다. 최고중의 최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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