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우 Apr 21. 2024

오늘이 완벽한 날들임을.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3)

행복하다는 것.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행복은 조건일까? 절대적인걸까, 상대적인걸까? 어릴때는 그것이 절대적인 수치에서 측량된다고 곧잘 생각한다. 정해져 있는 특정한 조건을 하나 둘씩 채워나가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깨닫고 나의 위치가 정립되고 나서는 그 개념이 조금씩 바뀌어간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누군가는 이것을 합리화라하고 누군가는 소소한, 일상의 조그마한 행복이라고 표현한다. 개개인마다 기준은 다르다. 그렇기에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 특히 SNS가 도래하고 나서, 세상을 휘감는 거대한 흐름이 등장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소위 '매트릭스'로 은유되는 일상, 평범함을 벗어나 너도 큰 돈을 벌고 크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흐름. 다른 하나는 현실에 만족하고 안위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흐름. 화면안에 사람들이 메시지를 던진다. 누구 하나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더 가진 것을 부러워하고 욕망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지금 내옆의 사람과 내 인생이 부족하다고 버려야 하는 무언가, 누군가로 인식되어야 하는가? 그렇지도 않다. 전자의 의견에 따르면 세상의 1프로를 제외한 사람들은 불행한 것이다. 이런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는 위안아닌 위안, 위로아닌 위로를 선사하는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투박해 보일 수 있는 일상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행복이란 어떤 것'인지 조망한다.



본 리뷰는 소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빔 벤더스는 팬데믹 이후의 삶을 살아갈 사람들이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지에 관한 화두에 눈을 돌렸다. 그는 사람들이 팬데믹 이후로 사람들이 삶을 더욱 '무모하게' 다룬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벤더스는 '더 많이 원하지 않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책 하나를 사면, 그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다른 책을 사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말이다. 또한 그는 일본의 공중 화장실에 꽂혔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일본의 공중 화장실은 건축적인 측면에서 흔히들 생각하는 이미지를 탈피해, 모두 개성있고 특색있다.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공중 화장실 청소부다. 히라야마는 자신의 직업을 애정하고, 혹자는 지루하다고 표현할 반복적인 일상을 애정하는 인물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오즈 야스지로의 DNA가 새겨져 있다 (위 스틸샷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다다미 샷으로 촬영된 장면이 많고, 특별하지 않은 인물의 일상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전개도 그렇다. 애초에 일본에서 촬영된 영화이기도 하고. 벤더스는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번쩍이는 삶을 좇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오즈 야스지로의 나즈막하고 느린 이미지를 가져오려고 한 듯 하다. 작은 것을 사랑하고 아낄줄 아는 이의 이야기인 것도 일맥상통한다. 본 영화는 사람들이 미처 조명하지 못하는 구석을 가져온다. 히라야마의 직업을 예로 들 수 있다. 화장실 청소부는 누구에게 자랑할만한 직업도 아닐 뿐더러 멸시하는 사람들도 있는 직업이다. 다만 히라야마는 문을 여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더럽게 쓰여진 변기를 깨끗하게 청소하는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고귀한 사람이다. 관객은 히라야마에게 분명히 배울 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직업의식에 투철한 사람은, 본인의 인생을 대할때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본 영화는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히라야마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포착할만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아내 년도별로 보관한다. 포착할만한 순간이란, 대단한 순간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화장실을 사용하기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을 때, 점심시간에 위를 올려다 보았을 때와 같은 대단히 일상적인 순간들이다. 그 순간에 포착할만한 장면을 알아보는 것은 개개인의 눈에 달렸다. 또한 히라야마의 음악취향은 대단히 매니아틱하다. 20세기 팝송을 즐겨듣고 21세기에 테이프로 노래를 청취하는 낭만도 겸비하고 있는 비범한 인물이다. 식물을 가꾸고, 중고서적이 가득한 서점을 즐겨가고, 자전거를 탄다. 그는 오래되었다고 버리는 인물이 아니다. 옛것이 돈이 된다고 한 아름 들고와 팔아버리는 인물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것, 개인적인 것의 힘을 믿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히라야마는 높은 자존감의 소유자이며, 본인의 인생에 만족하고 살아가니 매 순간 행복하기만 할까? 그렇지는 않다. 인간은 그런 동물이 되지 못한다. 영화 간간히 흑백의 이미지가 삽입된다. 이는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빈도가 잦아진다. 히라야마의 과거 잔상으로 추측되는 이 이미지들은 히라야마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게 추억일수도, 잊고 싶은 과거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히라야마는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종의 이유로 그는 화장실 청소부의 인생을 살고있고, 본인의 선택으로 예상된다. 다만 히라야마는, 동시에 싸우고 있다. 세상이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말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 모두가 그렇듯이.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모두 삶의 가장자리에서 분투하고 있듯이 말이다.


완벽한 날들이란 무엇일까? 완벽하다는건 무엇일까. 화장실 청소부처럼, 쉽사리 지나치는 일상처럼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로는 완벽할 수 없을까? 더 많이 가져야 완벽한 날을 살아갈 수 있을까. 히라야마는 일하러 문을 열고 나가는 매번 하늘을 보며 미소짓는다. 오늘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도, 우리의 과거가 어쨌던 간에 오늘은 완벽한 날이 될 것처럼. 일본엔 '코모레비'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뜻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다.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반짝임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건 오직 한 번,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늘 거기 있으니까 소중한 줄 모르고, 특별한 것에 눈멀어 놓치는 날들에, 사실은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특별하고 완벽한 나날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자신의 것을 빗대어 개개인의 존귀함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빔 벤더스와 야쿠쇼 코지의 협업은 위로같지 않은 위로를 선사한다. <퍼펙트 데이즈>는 회한과 기쁨이 공존하는 울음섞인 웃음같은 영화다. 태양이 떠오를때 늘상 웃지 못할수도, 결국 우리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래를 마주할 것이라는 걱정에 낙담할 수도 있다. 인간은 그런 동물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높이 날아오르려 하기 전에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고 애정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 남들의 시선과 잣대에 무너져내리는 현상은 비단 한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듯 하다. 과거가 우리의 미래가 될 필요는 없다. 어제가 절망이었다고 내일도 그러리라는 법이 없는 것처럼.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우리는 우리의 오늘을, 오늘의 나를 아껴 살펴보자. 무심코 지나쳐버리지 말자. 그렇다면 비로소 우리의 오늘이 어땠건 간에 그 날들이 결국은 완벽한 날들임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오컬트물과 영화관의 상관관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