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부박한 것이 삶이다. 나 바깥의 세계는 내 의지와 다르게 흘러간다. <문라이트>에서 샤이론의 삶이 그렇다. 마약을 하는 어머니,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 샤이론은 견뎌야 한다. 할 수 있는 것이 그뿐이기 때문이다. <문라이트>는 그 지난함을 인내하는 과정이야말로 누군가의 삶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샤이론 생애의 결정적 순간을 짚어가며 묻고 답한다. 리틀, 블랙, 블루 세 명의 샤이론은 어떻게 견뎌왔는가, 어떻게 견딜 것인가.
<문라이트> 스틸컷
영화가 그리는 인물의 순간이 일생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매체의 한계다. <문라이트>에서 묘사하는 샤이론의 순간 또한 삶의 일부다. 그에게는 화면 바깥의 세계가 있다. 이 영화는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되려 승인하고 서사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샤이론 역에 세 명의 배우를 캐스팅한 건 그 의지를 표명하는 기획이다. 유년에서 성년에 이르기까지 샤이론을 연기한 배우 세 명의 이미지 격차가 크다. 배우 사이의 급간에서 세월의 흐름을 짐작케 된다.
배우와 배우 사이 생략된 시간을 채워가는 건 감독의 몫도, 관객의 몫도 아니다. 거기에는 샤이론만이 있다. 2장의 샤이론이 완성되는 데에는 분명 담기지 않은 순간들의 몫이 있었을 것이다. 2장과 3장 사이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관객으로서는 인물에게서 감정의 단서들을 찾는 게 최선이다. 변화한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치 않았는지, 샤일론의 미세한 떨림과 표정에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문라이트>의 카메라는 여느 영화에서보다도 가까이서, 인물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그래서 쇼트가 비경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후안과 테레사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 샤이론의 모습은 반복적이리만큼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상대의 시점쇼트로, 때로는 객관적 쇼트로, 때로는 줌인(zoom-in)으로 담긴다. 효율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고수한 응시는 결국 이미지의 레이어를 켜켜이 쌓아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게로 전이시킨다.
한편 <문라이트>의 카메라는 기꺼이 감정선 바로 아래로 포복하길 자처한다. 감정에 앞서 나가는 이미지의 스펙터클이 이 영화에는 없다. 케빈에게 몸을 맡길 때, 카메라는 멀찌감치에서 모래알을 움켜쥐는 샤이론의 손을 담는다.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 카메라는 샤이론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기보다는 오버 더 숄더 쇼트로 바라본다. 한 인물이 마주하는 지난한 갈등의 여정을 담담히 좇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대목이다.
<문라이트> 스틸컷
가장 개인적인 서사에서 보편을 길어 올리는 부류의 영화다. 성 정체성은 샤이론이 겪는 내·외적 갈등의 기원이다. 이 총체적인 갈등을 완전히 일치된 궤적으로 감당했거나 앞으로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샤이론에게 투사되는 후안의 모습은 이 영화를 보편의 영역으로 끌어당긴다. 그가 해변에서 샤이론에게 술회한 기억에 따르면, 그를 지배했던 정체성 담론은 유색인종으로서의 고민으로 보인다. 이 영화에서는 각 인물의 일생을 휘감는 여러 층위의 정체성 이슈를 동등한 시선으로 품으려 한다.
이 과정을 위해 섬세한 이미지 언어를 구사한다. 1장과 2장에서 묘사하는 두 인물은 실로 달라 보인다. 후안은 이성애자이고 덩치도 있는 편이다. 자기 구역에서 마약 판매를 총괄하는 일을 맡고 있다. 반면 샤이론은 동성애자이며 왜소하다. 또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인물은 3장에서 비로소 접점을 이룬다. 세상의 풍파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는 체격을 키운 듯하다. 그에게서 후안이 보인다.
샤이론은 후안의 뒤를 따라 마약 판매상의 길을 걷게 된다. 부감으로 잡히던 후안의 자동차는 이제 샤이론의 것이다. 그런 그는 자기 휘하의 조직원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건넨다. 마치 후안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이런 이미지의 중첩들로, “나는 너와 같은 소년이었다”던 후안의 대사가 상기된다. 두 인물이 겪었을 삶의 궤적, 그리고 그 바깥 세계, 그러니까 극장의 관객들이 겪었을 삶의 궤적은 그렇게 포개진다.
<문라이트> 스틸컷
마침내 마지막 쇼트에 도달한다. 푸른 달빛 아래 파랗게 빛나는 리틀의 뒷모습이 담긴다. 블루라는 이름을 후안에게서 샤이론에게로 옮기는 이양식이다. 일체 된 존재로서 두 인물이 조망된다. 매일이 뜨는 달 같이 파랑은 앞으로의 이들도 물들일 것이다.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은 그렇게 계승되고, 파랗게 견뎌진다. 후안, 리틀, 샤이론, 블랙 그리고 블루. 서로 다른 표상에서 물색되는 공통의 감정. <문라이트>의 이미지는 그 결과로서 배태된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