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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Jul 19. 2024

삶의 본능

오늘은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이다.

우산이라도 쓰고 산책이라도 하려는 의지는 더욱더 거세진 빗줄기에 꺾이여 , 이내 발걸음을 집안으로 옮겼다. 난 어느샌가부터 나의 몸 안의 세포들을 자극하여 마음이 가라앉게 하지 않기 위해 무언가에 홀린 듯 매일 밖을 나가고 있었다.

그게 더위든 추위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추적추적 내리는 이 비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우산의 무게마저 견디며 걷기엔 오늘 나의 에너지는 역부족인 것이다.


집안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린 후, 나는 우산의 무게 대신 좀 더 가벼운 술잔을 잡았다 이 또한 나를 위로해 주는 수단인 것이다.


비마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엔, 갓 부쳐낸 김치전에 막걸리만 한 게 없다. 주부생활 십수 년 차에 김치부침개는 그야말로 누워서 떡먹기다. 물론 약간의 레시피조정으로 맛과 식감은 천지차이다. 튀김가루를 반쯤 섞고 콩기름을 조금 넉넉히 넣어 부치면 바삭한 식감을 더할 수 있고, 감자와 양파를 갈아 반죽에 섞어주면  반죽이 더 부드러우면서도  맛과 영양을 살려준다. 여기에 오징어까지 얇게 채 썰어 넣어주면, 그야말로 고급안주가 부럽지 않은  최고의 막걸리안주가 되겠지만, 비에 치여 급하게 노선을 바꾼 나는 그냥 간단히 김치와 김치국물로 간을 맞추어 부침가루만 잘 섞어  최대한 얇게 부쳐내는 정도의 스킬로 빠르게  준비했다.


아직 남들은 직장 해서 힘들게 고군분투하며 있을 대낮시간에 나는 시원한 막걸리와  간단한 김치부침개로 여유를 부리기로 정했으니 이 또한 호사다.


급히 부쳐낸 김치전을 내려놓기 무섭게 목 넘김이 맥주 못지않게 시원한 막걸리를 꼴깍, 꼴깍, 꼴깍 시원스레 한잔을 비워냈다.

50여 년 가슴속 먼지를 막걸리로 쓸어내리듯 단숨에  술잔을 비워내니, 마치 나의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금상첨화 따끈하게 부쳐낸 김치전을 한입 먹으면 인생에 덤을 얹은 듯  세상 더 바랄 게 없는 듯한 기분에 도취된다.


그래 인생 뭐 있나 이렇게 한잔술에 위로하고, 다시 또 아무 일 없는 듯 살아내면 그만이지..

지금 이 순간은 이보다 좋은 게 없다.

내일 찾아 올 숙취에 후회가 남을지 모르지만 인생은 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오늘 나는 무거운 우산 대신, 가벼운 술잔 들고 나의 삶의 본능을 끌어올렸으니,  오늘도 살만했다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글 .그림 / 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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