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은 예과시절이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전공과이다. 나는 예과 1학년 시절, 고등 동창들이 대학의 낭만을 즐기기도 전에 스펙을 쌓으라는 시대정신을 무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지금도 나를 이끌고 있는 지적 허영과 호기심이라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 책냄새 가득한 도서관에 들르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의대생은 의학만 알고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교수님들의 자각으로 여러 융합 교양 과목이 생겼고, 그중 하나가 의학과 철학이라는 과목이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에는 니체를 전공한 철학 교수님이 계셨는데, 나는 고등학교 때 얼핏 주워 들은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왠지 멋있어서, 때마침 출간한 니체 전집 책 몇권을 이해가 안 되고 잠이 계속 오지만 한두권 그야 말로 글자를 읽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소설도 좋았지만, ‘도덕의 계보’를 읽고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는 도덕과 사회문화가 어디서 왔는가. 도덕의 계보에는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공손하고, 예의 바르고, 희생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존중하는 문화가 오히려 노예의 도덕에 기원하고, 약함과 원한에 기반하여, 약자를 지배하는 강자를 규정하여 강자는 악하고 약자는 선하다는 프레임에 내가 당했다 라는 생각이 들게하였다. 물론 이후로 나는 노예 도덕을 충실히 이행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살고 있고, 교수님들의 자각과 무관하게 의학 중 내 전공과목만 알고 세상물정 모르고 전문가 중 일부로 살아가고 있다.
주인은 자신의 영지와 세계를 구축하고 발전하기 위해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강함을 키워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능력을 키우기 위한 자발적인 보상과 자율성이 필요하다. 노예는 반대로 지배당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동적 반응으로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배우고,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일을 해야하는 상태이며, 그 세계 안에서 내가 남보다 더 낫고 더 우위에 서기 위해 사회가 정한 규칙을 따르고, 도덕적 우위를 통해 더 우월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매트릭스에 위치하게 된다.
지금 내가 속한 사회는 어떠한가. 누군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면 이루고 강해질 수 있고, 실패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니면 정해진 틀 안에서 조금이나마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일하고 선행을 하고 그리고 이를 따르지 않는 또다른 약자에게 전가하고 비난하는 사회인가.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무한한 그리고 내적인 보상이 필요하고 자율성이 필요하고 처벌이 적을수록 유리하겠지만, 노예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에게 인정받는 외적인 경제적 보상과 나는 피해갈 수 있는 그렇지만 나보다 못한 사람을 위한 처벌이 더욱 달콤하다. 곧, 주인 도덕을 가진 사회는 자산의 성장과 자율성에 대한 인정에서 오는 내면적인 보상이 최고 우위에 서지만, 노예 도덕을 가진 사회는 규율에 대한 복종과 그에 대한 도덕성 우위와 참고 견딤에 대한 외적인 보상과 혹독한 처벌이 우위에 존재한다.
나 자신과 주변이 보상이 가득한 사회와 견제와 처벌 그리고 약간의 외적 보상이 존재하는 사회 - 당신은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