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막스 베버의 책을 보면, 예정설이 칼뱅교도 신자들에게 보상이 되어, 현세의 성공이 내세의 성공을 또한 약속하고, 이와 같은 집단을 가진 사회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혁명을 이루어 선진국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예정설을 믿은 칼뱅교도 뿐만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우대하고, 기술 발전을 위한 사람들을 우대하며, 노력에 기반한 성공한 개인을 사회에서 명예롭게 대우하고 보상을 준 국가는 성공하지 않았을까? 일견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한 얘기이지만, 보상과 처벌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은 흐름을 확인하는데에 결정적일 것으로 생각이 된다.
1492년 1월 스페인은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낸 이후, 더욱 신실한 가톨릭 국가가 되기 위해 이사벨 1세 - 페르디난드 2세가 알함브라 칙령을 3월 31일에 발령한다. 이슬람 세력은 이슬람교 선교를 권장하였으나 개종을 원치 않는 자에게는 세금 등 비용을 통해 자유를 보장하였으나, 레콩기스타 이후 스페인은 자국 내 기독교 동질성을 확보하고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에게 4개월 이내에 국외 이주를 명령하게 된다. 1391년부터 스페인 내에서는 유대인 등 비기독교인의 개종에 대한 요구가 많았고, 유대교 신앙을 비밀로 지켰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을 하는 등 박해가 이어졌다. 알함브라 칙령에 의해 개종을 거부하는 유대인의 재산 처분은 허용하였지만, 귀금속 반출은 금지하였고, 적어면 4만명 많게는 10만명의 스페인 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던 세파르딕 유대인들이 오스만 제국, 발칸반도 국가, 그리고 네덜란드 등지로 이주하였다.
현재까지도 금융, 상업 등 경제적 영향력이 많은 유대인 인구가 종교적 단일화라는 개념에 근거한 처벌적인 칙령으로 인하여 스페인에서 한번에 빠져나가게 되었고, 이후 유대인을 받아들인 오스만제국, 네덜란드 등에서는 유대인 이주 이후 경제적 부흥 및 황금기를 맞게 된다. 특히 네덜란드를 구성하는 상업이 발달한 도시들이 경제 발전을 하고 함께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 홀란트 주에 속한 암스테르담 등이 통치세력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금 부과 및 종교적 자유를 억제하는 행태에 반기를 들어 결국 1568년부터 80년간 독립전쟁을 거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독립을 인정 받게 된다. 종교적 합일을 위한 개념적이고 광범위한 처벌을 시행한 국가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보상을 추구한 국가의 차이가 확연히 나타난다.
두번째 예는 1534년 막스 베버 사상의 배경이 되었던 칼뱅교도 즉, 위그노 박해 사건이다. 칼뱅주의 신자들은 예정설에 따라, 현세에서의 성공을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임을 나타내는 징표로 해석했으며, 이는 자신과 공동체에 내적 확신과 외적 보상을 제공하는 믿음 체계를 형성했다. 칼뱅교도는 스페인의 유대인들처럼 금융업에 종사하고, 직물, 시계, 인쇄, 군사기술 등 고급 기술을 가진 직종에서 일하고 있었다. 1534년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는 자국 내 가톨릭 종교를 보호하기 위해 탄압을 시작하였고, 1562년에서 1598년 동안에는 위그노 및 가톨릭 세력간 내전이 일어나고, 1572년 8월 24일에는 파리에서 수천명의 위그노가 학살되는 사건로 시작하여 프랑스 전국적으로 최대 1만명 가량 학살되는 성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1598년 종교적 관용을 인정하는 앙리 4세의 낭트 칙령으로 갈등이 중단되었다가, 1685년 태양왕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철폐하면서 결국 위그노는 종교적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 잉글랜드, 프로이센, 스위스 등으로 이주하게 된다.
특히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는 낭트 칙령이 철폐된 1685년, 포츠담 칙령을 발령하면서 적극적으로 위그노 난민을 프로이센에 수용하였다. 종교적 자유, 거주의 자유, 관세 면제를 포함한 넓은 범위의 자유를 보장하였고, 기술자를 위한 작업장을 제공하고 의사, 교사 등에 급여를 제공하여 프랑스에서 유출되는 고급 두뇌 인재들을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유치하였다. 프로이센으로 2만명 가량의 위그노가 이주하였고, 이후 베를린, 프랑크푸르트를 포함한 프로이센 내 지역에서 직물, 제약, 무기, 인쇄, 금융 산업이 부흥하게 되었다. 이는 위그노 난민이 이동한 잉글랜드, 네덜란드, 스위스에서도 시행되었고, 이후 위그노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국가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혁명을 통해 현재까지 선진국으로 이어져오게 되었다. 물론 프랑스도 프랑스 혁명의 격변기를 거쳐 다시 일어서는 기회를 나폴레옹 시기 이후 맞이하게 되었고, Ecole polytechnique 등 세계 최초의 과학기술 고등교육 기관을 설립하게 되었고, 장인과 기술자 육성에 힘을 기울여 현재까지 과학 기술 강국으로 살아남았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최강대국인 미국이 성장 발전해온 배경에도 적극적인 이민정책과 기술인력 수용의 관대함,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한 보상이 존재함을 증명한다. 종교적 자유를 찾기 위한 청교도 이주 및 영국 정부의 식민지 건설을 위한 이주 뿐만 아니라, 이후 19세기 독일, 아일랜드, 북유럽 이주민을 통한 농업, 철도 건설, 광산, 제조업 부흥, 20세기 초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이주한 유대인 전문직과 이탈리아, 동유럽 이주민을 통한 의학, 과학, 금융, 상업, 교육 발전, 그리고 냉전시기동안 권위주의 정부를 피하고자 이주한 유럽 내 과학자들의 수혈을 통해 성장한 원자력, 우주 개발, 컴퓨터 개발 등이 이어져 왔다. 이민자들은 노동력 및 고등 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살고 소비하며 소비자, 납세자로 역할을 하면서 경제를 확대시켜 왔고, 이민자에 대한 관용성과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보상이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의 경제와 기술을 발전시키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최근에도 인도, 중국, 한국 등에서 AI, IT, 바이오 등 고급 인력이 미국으로 유입이 되고, 세계 최고인 미국 내 연구기관에서 연구하고 수련을 받고자 각국의 최고 학부를 나온 인재들이 미국에서 대학원 연구인력으로 역할을 하고 인정받아 미국에 정착하고 자국에 돌아가도 미국과 협력을 지속하는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
관대함과 자유를 기반으로 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보상을 통해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 미국이, 기독교, 인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기반하여 처벌을 하고 현재의 자유와 보상에 제한을 두게 되면 미국의 발전이 과거의 레콩기스타나 위그노 박해의 선례를 따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