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 : 같음이 아닌 다름

화이부동, 나의 선택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 이번 에피소드는 각색되었습니다.


몇 년 전, A는 B를 '일로 만난, 나쁘지 않은 관계'라고 믿었다.

그는 거래처 담당자였고, A는 위탁업체 직원이었다.

직급과 나이, 그리고 관계의 구조 속에서 A는 언제나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정중함을 잃지 않되, 친해지려 애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관계의 무게를 바꿔놓기도 한다.

비슷한 연배의 자녀를 키우며 나눈 고민들은 그들 사이에 작은 공감대를 만들었고, A는 그를 '업무 관계를 넘어선 사람’이라 여기게 되었다.



몇 해 후, 그들은 전혀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엔 A도 B도 누군가의 직원이었고, 사적인 관계는 업무의 경계를 흐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반가웠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려는 B를 도왔다.

그러나 곧 A는 점점 불편해졌다.

그는 회식 자리에서, 회의 자리에서 다른 동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A를 대했다.

친근함이라는 이름 아래 사적인 태도가 업무의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

A는 당황스러웠고, 그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서 끝내 B에게 불편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괜히 벽을 세우는 건 아닐까?”

A는 침묵했고, 그렇게 관계는 지속되었다.



시간이 흘러 A는 팀장이 되었고, B는 A가 이끄는 팀의 구성원이 되었다.

공적인 책임이 주어지자 A는 과거의 모호했던 감정들이 사실이었음을 직면하게 되었다.

B는 A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지시의 정당성을 상위 네트워크에 확인받는 방식으로 A의 권한을 흔들었다.

회의 중 A를 따로 불러내려 하거나, 사적인 메시지로 팀 내부의 문제를 ‘건의사항’처럼 포장해 전달하는 그의 태도는 A 감정과 업무 장악력을 동시에 뒤흔들었다.

그러나 A는 여전히 참고, 정리하고, 감췄다.



다른 팀원들은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실패를 감수하며 프로젝트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들과 A는 완전히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조율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반면, B는 ‘예전 방식’을 고수하며 점점 팀의 흐름에서 멀어져 갔다.

A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은 ‘같았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저, 다름을 회피한 채 ‘친밀함’이라는 외피로 덮어왔을 뿐이었다.



『논어』의 말이 떠올랐다.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
자왈 군자 화이부동소인 동이불화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화합하지만 동일하지 않으며,
소인은 동일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 - <논어_현대지성클래식23>, 공자 지음, 소준섭 옮김



A는 ‘화이부동’을 선택하고 싶다.

관계를 끊기보다, 조화롭게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A의 책임을 다하면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으로.



그 선택은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A의 태도가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A는 안다.

B가 지금 나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도 현재의 프로젝트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것도.

B의 역할은, 이제 그가 맡은 일 안에서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 것에 머무른다.



다른 팀원들 또한 A와 다르다.

그들은 프로젝트의 성공이라는 목표 앞에서 조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이 지금의 화합 속에서 동기를 얻고 끝까지 완수해 낼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지금 A가 선택한 ‘화이부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