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된다.
나는 줄곧 타인에게 큰 관심 없이, 내 안의 세계에 집중하는 사람이라 믿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란 결국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나는 무던한 사람이 아니라 여린 사람이었다.
타인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사소한 태도에도 쉽게 마음을 다쳤던 거다.
그렇게 반복된 자정 작용 끝에,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어느새 관계를 덮는 굳은살이 되어 있었다.
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
不善者而改之.
삼인행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
불선자이개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중에 선善한 것을 찾아서 따르고, 선善하지 못한 것을 보면 거울로 삼아 내 잘못을 고쳐야 한다.”
- <논어_현대지성클래식23>, 공자 지음, 소준섭 옮김
이 유명한 구절은 『논어』의 술이 편에 실려 있다.
공자는 술(述)에서 '창작이 아니라 전통을 이어 새롭게 해석'을 하였다.
그 속엔 배움에 대한 겸손,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한 성찰,
그리고 그것을 제자에게 전하려는 애정이 담겨있다.
공자에게 배움이란 혼자 깨닫는 일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실현되는 ‘도(道)’였다.
우리 집 막내는 마흔에 얻은 아이, ‘마흔둥이’다.
느린 기질이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평균 발달을 하지 않아 매일 마음을 졸였다.
뒤집기도, 기고 서는 것도, 말이 트이는 것도 남들보다 한 박자씩 느렸다.
혹시 코로나로 인해 입 모양을 자주 보지 못해서 그런가, 걱정도 했다.
그런 네살배기가 요즘 둘째 형에게 제법 앙칼진 태도를 보인다.
무려 아홉 살 차이가 나는데도, 허리에 손을 얹고 자기 할 말을 또박또박한다.
그 말투가 어쩐지 낯익었다.
순간, 뜨끔했다.
아이의 말속에서, 나는 내가 둘째에게 했던 말투와 태도를 본 것이다.
나는 늘 남을 통해 배운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누군가도 나를 통해 배우고 있었다.
내 무심한 태도, 내 쌀쌀맞은 말씨,
그 모든 것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흘러들고 있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 구절을 필사하며, 문득 깨달았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을 것이다.
남을 거울삼아 나만 고치려 했던 마음이 부끄럽다.
순간순간 바른말과 덕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럽다.
아마도 내가 더욱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이 곧 태도가 되지 않도록 늘 긴장하며 살았지만,
정작 자식 앞에서 가장 숨기고 싶었던 모습을 들켜버린 것이다.
관계는 언제나 양방향이다.
내가 누군가를 통해 배우고,
누군가도 나를 통해 배우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먹물이 든 위선자의 얼굴을 한 것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래서 오늘도,
『논어』 한 구절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배움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