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경제학은 실현 가능한가

― 이상과 현실 사이, 그 무게에 대하여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1편에서 나는 도넛경제학을 소개했다.

☞도넛경제학 1편 : 성장이 아닌 번영을 위한 경제 상상력

모두가 결핍 없이 살아가되, 지구의 한계를 넘지 않는 삶.

그 단순하지만 강렬한 도표 안에는
우리 시대의 윤리와 상상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글을 마친 뒤,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과연 이 도넛은, 그림에 그친 이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성장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일의 어려움


도넛경제학은 ‘성장이 아닌 균형’을 말한다.
하지만 이 개념이 현실의 정책과 제도로 구현될 수 있을까?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 시스템은 연금, 복지, 고용, 세금 등 핵심 제도를 지속적 경제 성장을 전제로 설계해 왔다.

성장이 정체되면 세수는 줄고, 고용은 불안해지며, 사회 불만은 커진다.

2020년 팬데믹 이후 OECD 국가들이 경험한 재정 압박과 고용 불안이 단적인 예다.

이때 정치인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탈성장’이 아닌 ‘더 빠른 성장’이다.

성장을 줄이라고, 생태적 한계를 고려하라고 말하면 유권자들은 불편해진다.

늘어나기만 하던 소득, 소비, 자산, GDP를 줄이자고 나서는 후보에게 표를 줄 이는 없다.

게다가 도넛은 희생을 요구한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을 조금 내려놓자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상은 평등하지만, 현실은 불평등하다


도넛경제학은 인류 보편의 사회적 기초를 말한다.

깨끗한 물, 교육, 의료, 안전한 주거.

하지만 이런 기초조차 누리지 못하는 나라가 지구상의 절반에 달한다.

북반구 선진국들은 이제 ‘성장을 줄이자’고 말할 여유가 있다.

반면 남반구와 개발도상국들은 여전히 생존을 위한 성장에 매달린다.

그들에게 ‘성장을 멈추라’는 주장은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쪽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위선에 가까운 요구일 수 있다.

기후 위기의 책임은 대부분 이미 성장한 나라들에게 있다.

그들이 “우리 모두 함께 멈추자”라고 말하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가?

도넛은 평등을 말하지만, 출발선은 이미 기울어져 있다.


시스템은 도넛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도넛경제학은 기존 경제 질서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질문만으로는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

오늘날 경제 구조는 속도, 효율, 경쟁, 그리고 끊임없는 성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체계에 가장 잘 적응한 주체는 플랫폼 기업, 금융 자본, 그리고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다.

그들이 과연 자발적으로 도넛의 경계 안으로 들어올까?
이윤을 포기하고,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존중하며 행동할까?

현실은 냉혹하다.
도넛경제학이 진정 실현되려면 강력한 정책 개입, 제도 혁신,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 정도의 ‘의지’와 ‘합의’를 모아 본 적이 없다.

견고한 구조, 느린 변화.
그것이 바로 도넛이 현실에서 점점 작아져 가는 이유다.


사례는 말한다: 성장에 취한 세계


브라질은 아마존 개발을 통해 ‘국가적 성장’을 외쳤지만, 되돌릴 수 없는 환경파괴를 불러왔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지만, 미세먼지와 수질오염은 국민의 삶을 직접 위협한다.

네덜란드는 브라질은 아마존 개발을 ‘국가 성장’으로 내세웠지만, 되돌릴 수 없는 환경 파괴를 초래했다.


성장은 수치로는 아름답지만, 삶의 질과 자연의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는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숫자로 보는 현실: 성장 논리가 정말 건강한가?



2023년 기준, 인류는 지구가 재생 가능한 자원의 약 1.71배를 소비하고 있다.


행성 경계 9개 중 4개 이상이 위험 수위를 넘었다(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질소·인·바이오케미컬 흐름 등).


150개국 사례 중 단 한 나라도 사회적 최소 기준을 충족하면서 생태적 한계를 지키는 곳은 없었다.


이 통계들은 계속되는 경제 성장이 정당한지, ‘충분한 삶’과 ‘지속 가능한 삶’이 분리될 수 있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도시들이 답을 찾는다: Amsterdam, Tomelilla, Cornwall


암스테르담(2020년) — 포스트 코로나 회복 전략으로 도넛 모델을 채택했다.



City Portrait 워크숍을 통해 ▲사회적 기반 ▲생태적 한계 ▲지역 기여 ▲지구적 영향 4가지 렌즈에서 시를 분석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CO₂ 55% 감축, 2050년까지 95% 감축, 2050년 완전 순환경제 지향.

상점에서는 탄소발자국·공정임금·토지환경비용 등 True‑Price 라벨을 붙여 소비자가 실제 비용을 인식하게 했다.



톰엘릴라 (Tomelilla, Sweden) — 작은 도시의 혁신 도전


인구 약 7,000명의 스웨덴 소도시 톰엘릴라는 2021년부터 도넛 모델을 재정·도시 계획의 기준으로 수용했다.


기존 건물 리모델링, 무료 대중교통 카드 제공, 생태 친화적 신축 학교 설립 등 정책을 도입했다.

주민들은 “변화의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된 기분”이라 말하지만, 탄소 배출 감소는 미미하며 교육과 생태 목표 달성에는 한계가 있다.


콘월 (Cornwall, UK) — 정책 결정에 도넛을 넣다

라이밋 체인지 의사결정 휠(wheel) 도구를 도입해, 모든 정책이 사회·생태·평등 영향을 포괄적으로 평가하도록 시스템화했다.


이 절차를 거친 정책의 40%가 수정되었으며, 환경과 평등 지표에서 개선 효과가 있었다고 보고된다. 실질적 구조 변화의 증거다.



그럼에도,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묻는다.


“이토록 많은 현실의 벽을 알면서도, 왜 굳이 도넛경제학을 이야기하는가?”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도넛경제학은 세상을 한순간에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것들 —
무한한 성장, 끝없는 소비, 경쟁만을 강요하는 가치관 —
그 모든 것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이 이론의 진짜 힘은 ‘해결책’에 있지 않다.

오히려 ‘질문’에 있다.


“무엇이 진정 충분한 삶인가?”


“누구의 지속가능성을 우선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희생하고 있는가?”


도넛은 명령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그 물음 앞에서,

우리의 삶도, 그 질문 앞에서 다시 조율되어야 하지 않을까.



냉철하게 바라보기


도넛경제학은 이상적이고 감성적인 비전만이 아니다.
‘성장 중심주의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은 선택들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가?’

암스테르담과 톰엘릴라, 콘월 같은 도시들이 작은 실천을 통해 만들어가는 가능성에 주목하되, 그 변화가 얼마나 기존 시스템을 흔들 수 있는지, 또 어떤 희생과 정치적 의지가 필요한지를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


☆마지막 질문☆


당신은 지금 현 경제 시스템 속에서 ‘삶의 중심’을 어디로 옮기고 있는가?